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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의 카메라 루시다

제목

너의 금강, 나의 금강_2004.10.16

닉네임
이공
등록일
2013-04-20 09:18:30
조회수
1554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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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금강, 나의 금강_(2004.10.16)

셔터누르기
셔터를 함부로 누르지 않는다.
열번 찍는대신 열번 생각하고, 한번 누른다.

사진가는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또는 쉽게 생각하는 부분까지 향상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보았던 사물과 차이가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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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사진가들은 변화할 수 없는가?

근래 들어 사진애호가들이 크게 늘었다. 조작이 간편한 고화질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누구나 쉽게 양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이와 더불어 서로의 사진을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의 정착도 사진애호가들의 확산에 한몫하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단순한 애호가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각종 인터넷 사이트나 블로그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진을 유통시키며, 전시나 출판의 형태로 사진을 발표하기도 한다. 전문가와 애호가, 프로와 아마추어는 그야말로 백지 한 장 차이밖에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경력이 오래 된 애호가들은 때로 전문 사진가보다 카메라를 비롯한 사진 전반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 전문가들이 오히려 자문을 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진의 질만 보더라도 그렇다. 사진애호가들의 소위 ‘작품’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여 직업을 바꾸어도 큰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원칙적으로 반길 일이다. 본래 사진은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이라는 측면에서 공리주의의 이상을 탁월하게 실현시켜줄 수 있는 방법으로 등장했다. 사물의 이미지를 가장 정확하게, 그리고 가장 신속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수단이 사진이다. 다른 어떤 수단도 정확도와 신속성의 측면에서 사진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는 물론 기계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유통의 측면에서 사진은 대량 복제를 통한 정보 공유의 길을 열어주었다. 오늘날 이집트에 가보지 않은 사람도 스핑크스와 피라미드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또한 모나리자나 올랭피아와 같은 명화를 간접적으로 보지 않은 사람도 거의 드물다. 이 모두가 사진 복제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사진의 기술적 개량은 디지털 시대로 넘어와 첨단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을 기계가 처리해 주는 시대에 사진을 찍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멋지게 사진을 찍는다. 다시 말해 뛰어난 사진기술을 습득하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짧은 기간 동안 사진기술을 습득한 이들도 놀랄 만큼 세련된 사진을 찍어내어 전시도 하고 출판도 한다. 이는 현대 문화의 풍요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의 면면을 꼼꼼히 뜯어 살펴보면 몇 가지 아쉬운 점이 보인다.

공모전 사진의 정형성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과 더불어 사진애호가 층이 그 어느 때보다 두터워진 것은 사실이다. 필름 카메라가 주종이던 시절만 하더라도 사진기술을 습득하려면 일정한 훈련이 필요했으나 이제 장비만 있으면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된다. 게다가 간단한 포토샵 처리를 통해 촬영에서 발생한 문제점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멋진 사진을 찍어보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정도가 된 셈이다. DSLR 클럽을 비롯한 각종 사진동호회의 인터넷 사이트에 사진을 올려 ‘작품성’을 인정받거나 개인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자신의 사진을 알리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감을 얻게 되면 전시를 하거나 사진집으로 출판을 하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 예술과 전혀 무관한 분야에 있던 사람도 이렇게 해서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이 우리 시대의 문화적 환경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최근에 와서 갑자기 생겨난 이상 징후는 아니다. 광범위한 아마추어 사진가군은 오래 전부터 있었고, 단순 애호가에서 시작하여 유명 사진작가가 된 이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그만큼 사진을 찍어 ‘예술가’가 되기가 수월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하겠다. 이 또한 사진이 근본적으로 공리주의적 예술의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그런데 이처럼 사진의 예술성에 매혹되어 ‘작품 활동’을 하는 애호가들의 사진에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주로 사진작가협회를 통해 사진을 발표해 왔으며 이런 경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편 요즘에 등장한 새로운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굳이 이런 협회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사진을 발표할 수 있는 통로가 많다. 따라서 그들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회원 가입절차를 요구하는 이 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다양한 통로를 찾아 자유롭게 활동하는 편이다. 사실 사진작가협회에서 개최하는 공모전은 오래 전부터 일반인이 사진가가 될 수 있는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실상 회원제, 점수제 등으로 운영되는 이 협회는 의사결정과 입상작 선정 방식 등에서 매우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특히 입상작 선정의 불투명성과 불공정성 등으로 불거진 문제들이 언론에 오르내리며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사진 활동을 하려는 일반인들에게 불신을 심어주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 협회가 주최하는 공모전은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발전을 가로막는 고질적인 병폐가 되어 왔다는 생각이다. 이는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사진애호가들에게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공모전은 다수의 출품작 중에서 몇 점을 뽑아 상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선정의 공정성, 객관성을 기하기 위해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출품자들은 이 기준에 부합하는 방식에 따라 사진을 찍는다. 정형화되는 것이다. 그 결과 사진작가협회에서 주최하는 공모전 사진은 이삼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비슷하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한 해 동안 촬영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진들이 일정한 패턴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사진애호가들의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사진이 좋기 때문에 변치 않고 계속 찍는 것 아니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유형의 사진은 그 집단 속에서만 생산되며, 그 집단 밖으로 벗어나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그만큼 정체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정체되어 있다는 말은 발전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현재의 카메라 기술을 이십년 전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지만 사진 자체는 변화가 없다. 사진은 카메라라는 기계가 찍는 것이지만 그 기계를 다루는 주체는 사람이다. 기계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는데, 사람은 그대로라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첨단 장비에 가까운 카메라를 가지고 찍어내는 사진이 이삼십년 전의 사진과 별 차이가 없다면 심각한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의 문제인가, 구조의 문제인가?


과거 아마추어 사진의 정체 현상은 공모전의 특수한 구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공모전과 무관한 요즘 사진애호가들의 사진 또한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정형화되어가는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사진애호가들의 사진을 평가하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공모전과 유사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네이버에서 운영하는 <오늘의 포토>를 살펴보자. 이 코너는 매일 올라오는 수많은 사진애호가들의 사진들 중에서 한 점을 선정하여 ‘작품’으로서의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번 선정되면 적게는 수만 번에서 십만 번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경우도 있어 여느 유명 예술작품보다도 대중적인 호응도가 높은 편이다. 어떤 미술관도 이처럼 대중들의 관심을 크게 받아본 적이 없다. 물론 여기에는 허수가 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의 완성도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진애호가들은 자연스럽게 외적 평가에 의지한다. 따라서 네이버 <오늘의 포토>는 전문가들을 위촉하여 사진 선정을 맡기고 심사평을 함께 싣는다. 그런데 ‘오늘의 포토’로 뽑히기 위해서는 공감을 표시하는 클릭 수에 따라 결정되는 ‘베스트 포토’에 우선적으로 선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은 수많은 베스트 포토 중 한 점을 골라 오늘의 최우수작으로 선정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회원들은 많은 클릭 수를 받기 위해 편법을 쓰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서로 클릭 해주기, 자신의 사진에 댓글을 달아주는 회원에게 클릭 몰아주기 등 사진의 내용과 무관하게 ‘베스트 포토’로 뽑히는 경우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진들의 경우 대개는 비슷비슷할 뿐만 아니라 규격화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베스트 포토’에 뽑히기 위해 전례를 따라 찍는 사태가 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애호가들의 발전을 가로막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요즘처럼 기계가 초점 맞추기에서부터 노출, 색 보정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난점을 해결해주는 시대에 기술적으로 결함이 없는 사진을 찍기란 매우 손쉬운 일이 되었다. 따라서 ‘좋은 사진’은 순전히 사진 찍는 사람의 눈에 달려있다. 기술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낮기 때문에 예리한 눈만 있다면 누구나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운 좋게 한 점 걸릴 수 있다는 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실제로 기계의 품질이 낮던 시대에도 우연히 만족할만한 사진을 얻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사진의 맹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따라서 사진의 완성도를 평가하여 그 ‘작가’가 향후 더욱 양질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우연히 걸려든 사진을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할까? 개별적인 사진 한 장만을 가지고 이를 판단할 수는 없다. 유명 작가가 찍은 사진과 일반인, 심지어는 아무 뜻 없이 행인이 찍은 사진은 시각적으로 별 차이가 없을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기계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토마스 루프가 독일인의 유형을 탐색하기 위해 찍은 증명사진 형태의 초상사진과 사진관에서 직업 사진가가 찍은 초상사진에 시각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결국 문제는 한 장만으로 사진의 질과 완성도를 평가하는 구조에 있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에 높은 평가를 내리는 것이 잘못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한 장의 사진에 모든 것을 농축시켜 내고자 했을 때, 그리고 그런 방식이 지속적으로 되풀이 되어 스타일로 굳어질 때 정형화는 피할 수 없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은 모든 것을 담고 있기를 요구한다. 완결된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초점이나 노출과 같은 기본적인 요소 외에도 구도, 프레임 구성 등에 결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결점을 보완할 다른 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은 상식을 뒤집는 파격과 과감성, 인습적인 사고에 균열을 주는 기발한 착상, 평범한 생각의 여백을 파고드는 새로운 실험 등을 통해 인간의 사유와 감성을 확장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 예술은 학습을 통해 주어진 재료들을 단지 예쁘게 재구성해내는 기술에 머물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최첨단 카메라를 가지고 습득해 온 것들을 단지 화면 위에 충실히 옮겨내는 데만 몰두한다면 사진의 수많은 가능성 중의 극히 일부분만을 더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를 위해서는 값싼 자동카메라로도 충분하다. 사진애호가들이 진정 예술을 지향한다면 그간 배워 온 것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은 교육을 거스를 때 예술답다.


올해 초에 전몽각 선생의 <윤미네 집>이 복간되었다. 1990년 초판본이 발행된 이후 이 사진집은 많은 사진애호가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토목공학자로 열성적인 아마추어 사진가이기도 했던 전몽각 선생이 큰 딸의 출생에서부터 성장 모습,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찍은 사진들을 모아 묶어낸 책이다. 그는 단지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소박한 사진애호가였을 뿐 거창하게 사진예술을 부르짖거나 ‘작품 활동’에 매진했던 열혈 사진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딸의 성장기를 기념사진의 형식으로 투박하게 기록한 <윤미네 집>은 한국사진의 역사에서 보기 드문 진귀한 사례에 속한다. 딸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군데군데 녹아있는 일상의 기념사진이 얼마나 진한 감동을 줄 수 있는지를 이 사진집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실린 사진들은 카메라의 성능이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던 시절에 촬영한 것이다. 또한 초점이나 노출, 구도와 같은 사진 구성의 기본 요소들이 정석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사진들의 진정한 가치는 그런 사진의 문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문법에 맞다 해서 반드시 좋은 글이라는 보장이 없듯이 말이다. 사진집의 구성 또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우연히, 운 좋게 진귀한 장면을 찍은 경우도 있지만 <윤미네 집>이 갖는 힘과 가치는 전체에서 나온다. 완결성을 갖춘 한 장의 사진은 분명히 눈을 잡아끄는 힘이 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사진애호가들이 쳇바퀴 돌아가듯 제자리걸음 하지 않고 발전해 나가려면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 또한 우리 문화의 성숙도를 판단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테니까 말이다.

(황해문화 2010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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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가_이민호_016.9360.2334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삶 속에 스며있는 차이의 의미를 찿아가고 있다..
* 블로그 http://blog.naver.com/minoylee <다큐멘터리, 사진을 만나다>
작성일:2013-04-20 09:18:30 14.50.3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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