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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제목

형의 사랑

닉네임
교장선생님
등록일
2011-12-16 09:59:33
조회수
1297
중학교 입학시험을 보러 홍산중에 가야 하는 날! 방문 밖을 보니 훤히 날은 밝아 오는데 부모님은 중학교에 보내지 않는다고 아침밥을 해주지 않고, 시험을 보러 가지 말란다.

나는 밤새 시험 보게 해달라고 울면서 밤을 지새워 눈이 뚱뚱 부었는데 홍산까지 갈려면 20여리나 되어 지금 가야 하는데도 아버지, 어머니는 농삿일을 해야 한다고 전날부터 시험보지 말라고 야단을 치셨다.

밖을 보니 날이 훤히 밝아 입술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부모님의 호령을 뒤로 하고 연필 한 자루 달랑 들고 허리춤을 한손으로 잡고 집 뒤로 내달렸다. 그 때 형이 나를 부르며 달려왔다.

연필심이 부러지면 깎아야 한다고 칼을 손에 쥐어주었다. 칼을 보니 낫 끝머리를 나무에 박아 만든 칼이었다. 늦지 않으려 죽어라고 아무 생각없이 오직 앞만 보고 뛰고 또 뛰었다.

논길과 신작로를 달리고 산을 넘고 들판을 내지르니 안갯속에 희미하게 학교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한 2㎞정도 남았는데 운동장에서 수험생에게 시험 볼 때 주의사항을 말씀하시는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들렸다.
그리고 교실입실 사이렌이 울렸다. 죽어라고 달려 운동장에 도달하니 운동장엔 수험생들은 한명도 없었다.

부랴부랴 복도에 다다르니 선생님이 빨리 들어가란다.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은 시험지를 막 받고 답안을 작성할려고 할무렵 헐레벌떡 책상에 앉고 시험지를 보니 문제가 보이지 않고 머리만 멍했다.

시험이 끝난 다음에 어떻게 시험을 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시험을 마치고 집에 와서도 부모님께 야단만 맞았다. 합격자 발표날 중학교에 가니 남자 120명, 여자 60명 뽑는데 입시 경쟁률은 2:1정도란다.

합격하리라 생각은 안했는데 다행이 합격을 했다. 충화초등학교에서 10여명이 시험봤는데 반 정도 합격했단다. 부모님께 몇날 몇일을 울며 매달려 승낙을 겨우 받아냈다.
그 땐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학교에서도 호롱불을 켜놓고 한밤중까지 입시공부를 했던 시절이었다. 먼 곳에 사는 친구들은 십오리 정도 되는 곳에서 부모님들이 마중나와 한 밤중에 산길을 갔던 기억이 난다.

밤에 추우면 논에 있는 볏단을 태우며 자녀들를 기다리던 모습들이 생각난다. 나는 다행이 학교에서 10여분 정도 거리니 퍽 다행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형은 중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동생이라도 다니도록 배려해준 형이 고맙다.

새벽밥을 먹고 6시에 집에서 출발하여 중학교를 다닐 때 어머니는 몸이 불편하여 투병생활을 하던 때였다.
어머니는 병석에 누워있으면 형은 어머니 병간호 뿐만아니라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새벽밥까지 해주며 집안살림살이까지 도맡아 했다. 어느 날 뒷간에 갔을 때 화장지로 쓸려고 놓은 형의 일기장을 읽었다.

어머니가 빨리 병이 나아 우리집도 명절때 떡도 해먹고 옷도 깨끗한 옷을 입고 남들처럼 명절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어머니는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몇년동안 투병생활을 하셨다.

어느 때는 병세가 심할 때면 새벽에 아버지는 어머니를 업으시고 홍산까지 가서 장항에 있는 병원에 가셨다가 밤이 되어서야 다 지친 모습의 부모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형은 중학교 다닐 수 있도록 새벽밥을 해주고 도시락도 싸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형의 모습이 그립다. 2011.12.9.
작성일:2011-12-16 09:59:33 175.213.177.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