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다. 마음으로만 그랬을 뿐, 용기를 내지 못했다. 기억의 뒤안길. 내가 다닌 초등학교가 있는 마을. 외할머니와 둘이서 살던 오막살이가 있던 마을.

설 전날 고향집에 내려간 김에 짬을 내었다. 마침 아들아이가 자동차를 가지고 있어 데려가 달라 했다. 걸어서 한나절 허우적거리던 길이 이야기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끝이 나 버렸다. 여기는 큰 내, 저기는 작은 내. 아들아이에게 될수록 천천히 운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도 길은 너무 쉽게 줄어들었다. 저기는 이발소가 있던 곳, 저기는 가게가 있었고 술집이 있던 자리, 또 저 건너는 무서운 상엿집이 있던 곳. 면사무소는 그 자리에 있네. 면사무소 옆이 학교이고 그 옆이 지서였지. 그리고 한참 더 가면 비성거리(비석거리)가 나오지.

학교도 옛 모습은 없었다. 다만 운동장 가장자리 키 큰 버즘나무 두 그루, 늙어서 꾸부정한 소나무 한 그루, 고사 직전인 벚나무만이 아슴아슴 눈에 익었다. 이내 마을길로 들어섰다. 감꽃을 줍던 감나무, 줄지어 선 죽나무, 무궁화 울타리 이미 없고 마을의 젖줄이던 공동 샘물은 썩은 물을 안고 있었다. 귁뜸마을. 한 바퀴 휘익 도는데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언덕에도 올라 보았다. 길은 새로이 생기기도 하고 지워지기도 했지만 내가 알고 있던 길들은 대부분 지워지고 없었다. 집들도 그랬다. 기억 속의 집들은 모두 빈집이 되었거나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새로운 커다란 집들이 눈을 부라리며 거만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른도 몇, 아이들도 몇 만났지만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마을길을 가로질러 뒷동산에 올랐다. 아이들과 항복 놀이를 하던 묘 잔등, 뒹굴기 놀이를 하던 잔디 언덕, 소나무 수풀은 그대로 있었다. 오소매샘물로 가는 오솔길이 용케 남아 있었다. 아, 변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마을의 뒤쪽에 있었구나. 그것은 하나의 발견이었고 조그만 환희였다. 발길은 이끌리듯 고목나무 아래를 스쳐 한 곳에 머문다. 조그만 뙈기밭. 겨울철이라 흙이 시뻘겋게 맨살을 드러내 놓고 누워 있는 거기. 거기는 외할머니네 집이 있던 자리다. 아무것도 없다. 하다못해 깨진 옹기 조각 하나 없다. 그저 조그만 밭일 따름인 빈 땅이 거리 있었다. 지난번 강추위에 둘러선 시누대들도 얼어 죽어 허연 몰골로 바람에 몸을 비틀고 있었다.

내 여기 무엇을 찾으러 왔더란 말이냐!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 길. 얼었던 흙이 녹아 구두 뒤축에 달라붙어 찐득거렸다. ‘꾸국 꾸국’, 겨울철인데도 어디선가 산비둘기가 슬픈 일도 없이 목 놓아 운다. 헤아려 보면 외할머니 세상 뜨신 지 25년.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외갓집을 떠난 지 50년. 그동안 무슨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던가?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이고 나에게 남겨진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다만 늙고 조그만 한 남자가 이렇게 작정도 없이 돌아왔을 뿐이다. 아니다. 잠시 이 자리 이렇게 머물다 다시 또 어디론가 흘러갈 뿐이다. 50년이 너무나 빠르다. 내 다시는 이곳을 찾지 않으리라. 그날 나는 산비둘기처럼 허튼 목청으로 목 놓아 울 수도 없었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 외갓집 아래에 있는 집. 그 또한 빈집. 마당에서 외할머니네 집에 있었던 디딤돌 하나를 젊은 아들의 힘을 빌어 가져온 것은 그런 대로 쓸쓸한 날의 조그만 전리품이었다고나 할까. 결과적으로 주인 몰래 가져왔으니 훔쳐 온 것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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