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장으로 승진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함께 교장으로 승진한 사범학교 선배 한분이 전화를 했다. 의례적인 안부 전화인 줄 알고 무심코 받고 보니 용건이 있는 전화였다.

“나 교장, 교장으로 발령되었으니 우리 모임에 들어와야지. 그래서 안내해 주려고 전화했네.”
“무슨 모임인가요?”
“응, 공주시내 교장 모임이야. 그런데 이 모임엔 몇 가지 자격 조건이 있어.”
“뭔데요?”
“그게 말야. 공주하고 관계있어. 우리 모임은 교장들의 모임인데 공주에서 태어나고 공주에서 초등학교 나와서 공주에서 교장 노릇 하는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는 모임이야.”
“그런가요? 그럼 전 안되겠는데요.”
“왜?”
“전 공주가 아니라 서천에서 태어났고 초등학교도 서천에서 다녔거든요.”
“그런가? 그럼 나 교장은 안 되겠네.”

얘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더 이상 진행시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멍한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알지도 못한 모임에 들어오라고 했다가 자격이 안 되니 그만두라는 선배의 전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니 그게 공주사람들이었다. 공주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과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공주 사람들은 그를 선선히 공주 사람으로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 ‘서천 사람이 공주에 와서 오래 머물러 산다’고 말할 따름이다.

우리 집 식구 네 사람을 기준으로 말해 본다면 아내와 나는 서천 사람이고 부여 사람일 따름이다. 완벽한 공주 사람은 딸아이 한 사람뿐이다. 아들아이는 네 살 때 공주로 와 공주의 초등학교를 다니기는 했지만 태어난 곳은 서천이고 서천에서 주는 주민 등록번호를 받은 사람이다. 공주 사람이 되기는 참 어렵다.

내가 선배 교장이 제시한 바와 같이 완벽하게 공주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방법이 있다면 오직 하나, 세상의 목숨이 다한 뒤 공주 사람을 아버지 어머니로 택해 다시 태어나고 그런 뒤에도 공주에서 자라 공주에 있는 초등학교를 나오는 도리밖에는 없다.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고, 공주를 열심히 사랑하고 공주에 더욱 오래 살면서 반만이라도 공주 사람이란 말을 듣고 싶다. ‘한국의 시인 나태주’ 이기는 하지만 ‘공주의 시인 나태주’로 불리고 싶은 게 또 하나의 조그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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