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기영 공주대 명예교수.
우리는 기쁜 일이 있을 때에 음식을 차려 놓고 여러 사람이 모여 즐기는 일을 ‘잔치’라고 한다. 장수(長壽)함을 축하하는 잔치를 수연(壽宴)이라하고, 축하ㆍ위로ㆍ환영ㆍ석별 등의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이 모여 베푸는 잔치를 연회(宴會)라고 한다. 마을이나 지역에서 모두 함께 경축하여 벌이는 큰 잔치를 축제라고 한다.

가정에서 가족과 친척, 지인들과 함께 기뻐하며 즐기는 축하잔치에는 결혼식으로 통칭되는 혼인잔치, 자녀들의 백일잔치, 돌잔치, 가족들의 생일잔치, 부모님들의 회갑잔치, 칠순잔치가 있다. 서양 사람들의 일상사에서 친목을 도모하거나 무엇을 기념하기 위한 잔치나 모임을 파티(party)라고 한다. 우리도 예전에는 모두 잔치라고 말하던 일들을 요즘은 파티로 바꾸어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의 잔치와 서양의 파티는 문화적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처럼 좌식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예부터 잔치문화가 일찍이 자리 잡았고, 입식문화에 익숙한 서양 사람들은 파티문화를 정착시켰다.

잔치가 진행될 때는 좌석이 미리 준비되고 음식이 차려진 상태에서 주빈이 좌정을 하면 모두 자리에 앉아 식사와 음료를 들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자리에선 한번 정해져 앉은 자리가 식사가 끝날 때까지 유지되어야 한다. 중간에 왔다 갔다 하거나 식사 중 이야기 소리가 커지는 것은 결례가 된다. 이것이 우리의 잔치 문화이다.

그러나 서양식 파티의 진행은 대체로 테이블 둘레에 서서 진행되므로 음료나 술잔을 들고 테이블을 옮겨 다니며 인사도 나누고 담소하며 파티를 즐긴다. 한자리에 붙박이마냥 있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 이것이 파티문화이다.

우리의 잔치문화와 서양식 파티문화를 비교해 보면 잔치문화는 정적이고 파티문화는 동적이다. 잔치는 미리 준비하여 상에 올린 음식을 공동으로 먹지만, 파티에서 음식은 개별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음식을 덜어먹는 뷔페식이다. 즉 잔치문화는 함께하는 문화이고 파티문화는 개별화된 문화이다.

그리고 우리의 잔치문화는 상하 위계가 분명하여 매우 수직적인 사고 형태를 유지하는 특성이 있으나, 서양의 파티문화는 참석자 모두가 동료적 입장을 견지하는 수평적 사고형태를 갖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인간생활에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 할 수 는 없다. 다만 생활의 양태에 따라 다양하고 서로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다. 근래에 와서는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섞이고 재창조되는 퓨전적 문화형태가 우리의 생활을 많이 변화시키고 있다. 요즘 결혼식이나 고희연 같은 잔치에 가 보면 어느덧 우리의 잔치문화도 동서양의 문화가 융합된 퓨전적인 잔치문화로 확연히 변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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