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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약령대시(藥令大市) 열려 성황 이뤘다니
오희숙 기자  |  oheesuk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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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9.09  23: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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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여헌 향토문화연구회장이 공주봉황초등학교 옆 골목을 가리키며 약령시가 열리던 곳이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공주가 대구와 함께 1년에 두 차례 약령대시(藥令大市)가 열려 성황을 이뤘음을 전해 주는 기록이 있다.

약령시는 일정장소에서 정기적으로 열린 한약재 시장으로, 서울의 ‘경동시장’이나 대구의 약령시라면 몰라도 ‘공주약령시’라고 하면 대단히 생소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기록에 보면 공주는 대구와 함께 1년에 두 차례 ‘약령대시’가 열려 성황을 이뤘음을 전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공주의 약령시는 어떤 배경에서 시장이 형성됐으며 그 위치는 어디였을까?

문헌에 의하면, 1910년 6월에 ‘조선주차헌병대사령부(朝鮮駐箚憲兵隊司令部)’에서 간행한 10개 항목으로 분류한 ‘조선사회략설(朝鮮社會略說)’이 있는데, 그 4항 ‘직업’란 의 ‘당재방(唐材房)’ 조목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당제방은 약재를 청국에서 수입하여 도매와 소매를 한다. 지방은 대체로 경성에서 구입하고 대구(음력 2월과 10월)와 공주 같은 곳은 1년에 두 번 약령대시(藥令大市)가 열린다. 인삼 녹용을 제외하고 그 밖의 것은 대개 청국의 약재이다.’

글 내용가운데서 거래되는 약재는 ‘청국에서 수입’한 것 또는 ‘서울에서 구입한’것이 마치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부분은 당시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흠은 있으나, 공주에서 약령대시가 열렸음을 전해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렇듯 일제강점하의 기록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공주 약령시의 역사는 꽤 오래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언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약령시의 개장이 효종(1649~1959)때부터라고 하니, 공주 약령시도 17세기 중엽부터 확립된 것으로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원래 한약재 시장의 개설은 서민들의 소득증대에 목적이 있었다기보다는 진상용(進上用)과 관수용의 한약재 구입 편의 때문에 설치됐고, 따라서 시장의 관리는 관(官)에서 담당했던 것이다.

   
▲ 공주봉황초등학교 정문 왼쪽에 ‘약령시 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공주감영읍지(1789)’에 보면 공주감영에서는 도내각지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그 생산지에 따라서 할당하고 월별로 나누어 납품시켰는데, 정월령(正月令)에서 시월령(十月令)까지 있었다. 이렇게 수집된 한약재는 ‘심약(審藥·종9품)’이 검사해 봉(封)하고 중앙에 상납했다.

따라서 공주감영에서는 10월까지는 매월마다 도내 각처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수합되고 관수용으로 충당되는 일정량을 제외한다면 자연히 약령시가 서게 되고 서민들 사이에서 활발한 거래가 이뤄졌을 것이다.

공주의 시가지는 일제 때 즉 1900년 초에 시가지 정비가 이뤄졌기 때문에 지금은 옛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그 지역에 오랫동안 살아온 노인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현사대부고 앞길에서 교육대학방향으로, 옛 알스사진관에서 50미터거리를 ‘약전골’로 불렸다고 한다.

현재 사대부고자리에는 ‘선화당’을 중심으로 양쪽편 동쪽에는 관아 건물이 즐비했고, 봉황산 남쪽으로도 ‘진리청(鎭吏廳)’, ‘영선고(營繕庫)’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약령시장은 관아의 외곽지대에 해당된다. 지금은 직선도로가 곧게 뻗어 있지만 옛날에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이었을 것이다.

윤여헌 향토문화연구회장은 “중앙의 전의감(典醫監)에서 파견되는 심약은 의술에도 능한 사람으로서 그의 영향력은 이 고장에 많은 명의를 배출했다”며 “봉황동에 침술로 유명했던 박태연·백창기씨, 산성동의 권재수씨 그리고 중동의 광창당 한약방 김락현씨 등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제 강점기 공주가 대구와 함께 2월과 10월에 40여일 동안 ‘약령대시’가 열려 성황을 이뤘음을 알리는 표석이 현재 공주봉황초등학교 정문 담장 옆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공주시에서 불법 쓰레기 투기를 막기 위해 그곳에 화분을 갖다 놓아 표석을 아예 가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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