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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명칭변경
류석만 기자  |  fbtjrak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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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7.15  13: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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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숙 시의원, 지난 3월 5분발언 통해 명칭변경 제안

▲ 사적 제13호인 ‘공주 송산리 고분군’의 공식 명칭이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바뀔 예정이어서 시민들이 크게 반색하고 있다. 공주시 제공

 

일제가 명명한 충남 공주 ‘송산리 고분군’이 무려 1세기 만에 ‘무령왕릉과 왕릉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됐다. 당장 도로변의 문화재 안내판이 바뀔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사적 제13호인 ‘공주 송산리 고분군’을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부여 능산리 고분군’을 ‘부여 왕릉원’으로 공식 명칭을 바꾼다고 예고했다.

송산리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고적으로 지정한 뒤 우리 정부가 1963년 1월 사적으로 다시 정했으나, 1971년 무령왕릉 발굴 이후 명칭 변경 여론이 꾸준히 있어왔다.

특히 무령왕릉 발굴 50주년과 무령왕의 ‘갱위강국 선포’ 1500주년에 즈음해 2021년 한해를 ‘무령왕의 해’로 선포한 공주시로서는 시민들에게 친숙한 이름으로 명칭을 변경해 무령왕의 위상을 높임과 동시에 고분군의 위상을 높이자는 차원에서 문화재청에 사적 명칭 변경을 요청했었다. <본보 2021년 5월 29일 16면 보도 - 공주 ‘송산리고분군’→‘무령왕릉고분군’으로 바뀔까?>

현재 ‘송산리’란 지명이 쓰이지 않고 있는 점, 시민들이 송산리 고분군을 무령왕릉으로 통칭해 사용하고 있는 점, 무령왕릉이 문화재 지정 명칭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지 못한 점, 고분군으로 표시됨으로써 무령왕릉의 위상이 부각되지 못하고 홍보 효과 역시 크게 반감되고 있는 점, 송산리 고분군이 무령왕릉 지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 의사소통에 혼선을 야기하고 있는 점 등이 명칭 변경 요청의 주요 배경이다.

그리고 마침내 문화재위원회는 공주시민들의 바람을 전향적으로 검토, 공주웅진백제왕릉원(무령왕릉), 송산리백제왕릉원, 웅진백제왕릉원 등 시가 제출한 안보다 한층 진일보한 명칭을 붙여줬다.

‘4수만’에 시민들의 바람이 이뤄질지 이날 오후 열린 문화재청 사적분과위원회 심의 결과에 귀를 쫑긋 세웠던 시민들은 사적 지정 명칭 변경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송산리 고분군의 사적 명칭 변경은 물론 추후 세계유산 지정 명칭 변경 추진을 제안했던 오희숙 공주시의원은 “시민들의 여망 실현돼 기쁘고, 무엇보다 백제의 중흥을 이끌었던 무령왕을 뵐 면목이 없었는데 이제 홀가분해졌다”며 “전향적인 결정을 내려준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무령왕릉은 한국 고고·역사학계의 기념비적 발굴이자, 세기의 발견으로 평가받는다.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인 1971년 7월 8일 무려 1500년의 타임캡슐이 열리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배수로 공사인부의 삽날에 무덤 벽돌이 걸리지 않았다면 백제사는 아직도 패망의 역사라는 인식 속에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을 것이다.

무덤의 주인공은 바로 521년 ‘갱위강국(更爲强國, 다시 강국이 되다)’을 선포하고 백제의 중흥을 이끈 백제 25대 무령왕. 연꽃무늬 벽돌로 만든 무덤 안에서 지석(매지권)을 비롯해 석수, 금제관식, 도자기, 유리구슬 등 4600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국보만 무려 17점, 단일 무덤 최대다.

특히 무덤의 주인을 알리는 지석 출토는 삼국시대 어느 무덤에도 없던 유물의 절대 편년을 제시함으로써 고고학 발전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사마’는 무령왕의 생전 이름으로, 지석에는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라는 이름과 함께 계묘년(523년)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왕뿐만 아니라 왕비의 지석도 발견됐다. 출생, 재위, 사망 연도가 확실한 삼국시대 고분은 무령왕릉이 유일하다. 삼국시대 주인공이 밝혀진 유일한 왕릉이다.

일제강점기 때 발굴되거나 도굴되지 않은 유일한 백제 고분으로, 송산리 6호분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으면서도 기적적으로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이나 도굴꾼들의 눈을 피해 1500년의 비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일본산 금송으로 짠 관과 중국제 청자 및 동전꾸러미, 동남아 원료인 구슬 유물 등을 통해 6세기 동아시아를 호령했던 해상왕국 백제의 위상을 확인시켰다.

고대 동아시아가 백제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건축기술과 불교문화 등이 확산 전파됐음이 드러남으로써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의 단초를 제공, 지난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반열에 오르는데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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