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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취리산에서 백제-신라 하늘에 화친 맹세
오희숙  |  oheesuk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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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4.29  20: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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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잡아 피 나눠 마시고 제물은 북쪽에 묻어

   
▲취리산은 공주생명고등학교 북쪽에 있는 해발 52.4m의 낮은 산으로, 금강과 공산성이 바라다 보인다.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 북쪽에 있는 취리산은 백제가 멸망한 직후인 신라 문무왕 5년(665)에 당나라 장수 유인원(劉仁願)의 입회하에 백제의 왕자로 웅진도독에 임명됐던 부여 융과 신라 문무왕간의 동맹서약을 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가 멸망한지 5년이 되는 665년 공주 취리산에서 백제와 신라의 회맹(會盟)이 이뤄졌다는 내용이 있다.

이미 알고 있듯이 나당(羅唐)연합군은 동상이몽으로 연합해 일단 백제를 멸망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두 나라의 연합은 그 목적이 달랐기 때문에 백제를 멸망시킨 후, 이에 따른 양국사이의 갈등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게 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반도의 지배를 획책하고 있던 당나라가 신라를 견제하면서, 동시에 백제 부흥운동을 무마·회유할 목적으로 회맹을 추진했던 것이다.

당나라는 이때, 포로로 잡아갔던 의자왕의 아들 부여 융을 웅진도독으로 임명해 백제유민의 치열한 부흥운동을 희석시키고, 아울러 백제 고토(故土)에 대한 부여융의 통치권을 일시 보장해 주는 듯했다.

그러나 백제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했던 신라를 견제하고자 한 제스처였으며, 취리산의 회맹은 바로 이 같은 미묘한 시기에 당나라에 의해 준비된 일종의 정치적 행사였다.

물론, 신라는 백제의 부흥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회맹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점을 들어 강한 반발을 보였지만, 강권으로 이를 설득한 당나라는 마침내 665년 8월 유인원의 입회하에 부여 융과 신라 문무왕으로 하여금 백마를 잡아 그 피로 하늘에 화친을 맹세하게 했던 것이다.

당시의 회맹문은 ‘삼국사기’에 전문이 실려 있는데, 이는 당나라 장수인 유인원이 지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웅진도독 부여 융으로 하여금 백제 선왕들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옛 강토를 보전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나제 양국은 이후 서로 화친해 환란을 서로 구하고, 형제처럼 도우며 지낼 것을 하늘에 맹세한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취리산에서 나제 양국은 화친의 맹세를 하게 되는데, 그 약속의 징표로 백마를 잡아 피를 나눠 마시고 제물을 제단의 북쪽에 묻었다고 한다.
 
   
▲취리산은 당나라 장수 유인원의 입회하에웅진도독에 임명됐던 부여 융과 신라 문무왕간의 동맹서약을 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윤여헌 공주향토문화연구회장이 취리산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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