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무릉동을 빛낸 사람들

▲윤여헌 회장이 무릉동을 찾아 퇴석 김인겸의 묘소 근처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장편 기행가사인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를 지은 퇴석 김인겸(1707년~1772년) 선생이 공주시 무릉동 출신 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또한 김인겸 선생을 기리기 위한 가비(歌碑)가 전막 입구 금강교 옆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퇴석 김인겸은 57세 때인 1763년에 일본 통신사 조엄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일본의 문물제도와 풍속 등에 관해 보고, 듣고, 경험한 바를 순국문으로 기록한 8,243구의 장편 기행가사인 ‘일동장유가’를 지었다.‘일동장유가’는 중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렇기에 일동장유가를 지은 지 225년이 되는 1989년 전국의 국문학자들이 발기하고 출연해 공주 금강교 옆에 퇴석 김인겸의 가비(歌碑)를 세웠다.

가비의 기문(記文) 가운데엔 ‘오늘 선생의 인품과 유운(遺韻)을 사모하는 후진들이 정성을 모아, 생시의 선생이 옷자락 펄럭이며 건너다니시던 이 오얏나루 언덕에 조그만 한 덩이 돌을 세워 기린다’고 적혀있다.여기에 나오는 오얏나루는 선생의 향리가 가까운 무릉동이었다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

▲윤여헌 공주향토문화연구회 명예회장이 퇴석 김인겸 가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 회장은 “가비가 차 한대 근접하기 어려운 곳에 세워져 있다”며 “선생의 고향인 무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가비(歌碑)는 차 한대 근접하기 어려운 곳에 세워져 있어 누구하나 눈 여겨 보지 못하고 있다.이 때문에 무릉동 개발과 함께 선생의 연고지를 찾아 무릉동 입구에 마땅히 옮겨 세워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그 곳에는 퇴석 김인겸의 묘소로 널리 알려진 무덤도 있기 때문이다.

무릉동은 백제시대의 왕릉이 있다하여 ‘무릉동’이라 한다는 설과, ‘무른들’ 또는 ‘무른돌’에서 ‘무릉동’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으며, 고려왕조가 멸망하자 낙향한 남궁(南宮)씨들의 집성촌이다.

그리고 외부에도 잘 알려진 유명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고을이기도 하다. 고 박동진명창의 고향도 이곳 무릉동이다.

1998년 고 박동진명창의 공적과 예술혼을 기리고자 그의 고향인 무릉동에 ‘박동진판소리 전수관’을 건립, 후진양성과 중고제인 공주소리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또 공주시와 박동진판소리 선양위원회는 매년 ‘박동진판소리명창·명고대회’를 개최, 박동진옹의 판소리 예술혼을 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 박동진명창 뿐 아니라 서화가 송재 조동욱 선생도 무릉동 출신이다.

윤여헌 공주향토문화연구회 명예회장은 “이 고장을 빛낸 분들의 업적을 기리는 것은 후학들의 의무”라며 “전수관과 함께 기념관을 마련하고 퇴석 김인겸 선생과 송재 조동욱 선생의 유묵을 전시하게 되면 학습의 장으로 활용하거나 또는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일 말고도 우리들의 마음에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일본 시즈오카(鶄岡)현 시미즈(淸水)시에 있는 청견사(淸見寺) 본당에 퇴석 김인겸 선생이 친필로 쓴 ‘두보 詩’ 현판이 걸려있다. 현판에는 소화(小華) 金 士安(사안:김인겸의 字)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판 사진-윤여헌 회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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