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나루 배나무 과수원집

 ▲나태주 공주문화원장.
개, 고기를 샀다. 보신탕으로 쓰이는 고기가 아니라 개에게 줄 고기를 샀다.

일금 5천원, 잔치국수 두 그릇 값이다. 한동안 어쩔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시장으로 가 닭고기튀김 반 마리를 산 것이다. 나는 주인에게 뼈를 발라네고 살코기만 비닐봉지에 담아 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도 먹기 힘든 닭고기튀김을 개에게 주기 위해서 사다니, 좀 과한 일이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닷새 동안이나 누렁이의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쉬이 만나러 가지를 못했다. 마음속으로만 한번 가 보아야지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번거로운 일들 때문에 미루어 두었던 일이기에 큰맘 먹고 그렇게 한 것이다.

자전거 페달을 재게 밟아 곰나루 쪽을 향하면서도 자꾸만 누렁이 생각이 났다. 나는 체질적으로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서 개를 길러 본 일이 없을뿐더러 남의 집 개도 귀여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자꾸만 누렁이의 모습이 눈에 밟히면서 그동안이라도 누렁이가 그 집에서 없어졌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지난 일요일 오후였다.  공주의 관광지를 보기 위해서 온 외지 손님을 금강 변 곰나루로 안내했다. 곰나루 부근에 주차를 하고 곰나루 솔밭으로 발길을 옮기다가 바로 옆 과수원에 새하얗게 핀 배꽃을 보았다. 나무 위에 함박눈이라도 소복소복 내려 쌓인 것 같았다. 곰나루 솔밭행을 귀로 미루고 배나무 과수원으로 가 배꽃 구경을 먼저 하기로 했다.

“쥔 계신가요? 쥔 안 계세요?”
암만 주인을 찾아도 주인이 보이지 않았다. 주인 대신 과수원 입구 쪽에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통통하니 살이 오른 토종개, 털빛깔이 누르끄름한 개였다. 언뜻 보기로는 불곰 새끼처럼 생겨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개가 슬금슬금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수인사를 나누자는 건지 우리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야, 야, 누렁아, 우린 나쁜 사람들이 아니란다. 배꽃이 예뻐 배꽃 좀 보러 왔단다. 배꽃 사진만 몇 장 찍으면 돼.”
개가 알아듣든지 말든지 나는 개를 어르면서 과수원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활짝 핀 배나무 옆에 아직 꽃봉우리를 문 사과나무도 사진기에 담았다. 과수원집 누렁이가 슬슬 눈치를 살피며 사람들 옆으로 와 휘적휘적 탐스런 꼬리를 흔들어 댔다.


“저리로 가, 저리로 가.”

그래도 누렁이는 사람 곁을 떠나지 않고 졸졸 따라다녔다. 나중에 사진을 모두 찍고 과수원집을 나와 곰나루 쪽으로 향하는데 누렁이가 앞길을 막으면서 사람의 다리 부분에 제 몸둥이를 비벼 댔다.
“이 녀석 봐라. 사람한테 이렇게 이쳐 대고 그러네.”
빈집을 혼자서 지키느라 개도 많이 고적했던가 보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외로워지면 살아 있는 다른 목숨을 이렇게 그리워하게 되어 있다.

우리가 곰나루 솔밭을 누비며 둘러보는 동안에도 누렁이는 내내 우리 일행 곁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저걸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는 건 일단 좋은 일이겠지만 저러다가 낯선 사람이 끌고가면 어쩌나 싶기도 해 걱정스러웠다.


“야, 야, 너 이 이상 따라오면 안 돼, 너의 집은 여기란 말야.”
그날 우리는 누렁이를 데리고 과수원이 있는 데까지 가서 누렁이를 집 안으로 몰아넣어 주고 돌아와야 만 했다. 오면서도 내내 마음이 짠했다.

곰나루 과수원에 도착해 보니 다행히 누렁이가 집에 있었다. 오늘은 줄에 매인 채 제 집앞에 앉아 있었다. 느긋한 모습이었다. 그새 나를 잊어버렸는지 가까이 갔는데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과수원 안에 자동차가 세 대나 있는 걸로 보아 주인이 집에 있는 듯싶었다. 주인이 누렁이를 닮아 둥싱둥실하게 살이 찐 젊은 남자였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내 알아차리고 누렁이에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다.
나는 사 가지고 간 닭고기튀김을 누렁이에 밥 그릇에 쏟아 주었다. 누렁이는 잠깐 사이에 고기를 먹어치웠다. 그러고는 다시 내 손을 올려다보았다. 양이 차지 않는 듯 주둥이로 맨 사료를 물어 아득 아득 깨물어 먹었다. 두서너 번 을러도 누렁이는 아는체도 하지 않고 가까이 오려 하지도 않았다. 다만 킁킁 거리며 고기가 더 없냐는 투의 몸짓만 계속했다. 주인이 집에 있어서 그럴 것이었다.

누렁이는 결코 지난 일요일 혼자서 집을 지키며 낯선 사람한테까지 이쳐 대며 따르던, 외로움을 많이 타던 그런 개가 아니었다.

개는 역시 개였다. 개 같은 개였다.
“이 댁 과수원 배 맛이 좋은가요?”
머쓱하니 누렁이 앞에 서 있다가 주인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야 모르지요. 그건 손님들만이 알아서 평가할 일이니까요.”

자기 집 배 맛이 좋다는 말인지 안좋다는 말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우회적인 자신감의 한 표현 같기도 했다.

“ 자,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가을에 배 사러 다시 오겠습니다.”
나는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누렁이는 전혀 알은체하지 않았다. 갈 테면 가고 말 테면 말라는 투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지난 일요일에 비한다면 너무도 딴 판이었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 과수원집 문간을 나오면서 나는 훨씬 가볍고 편안한 마음이 되어 있었다.

“누렁아, 안녕! 잘 있어.”
그렇게 해서 나는 잔치 국수 두 그릇 값을 치르고 남의 집 개한테 얹혔던 며칠 동안의 안쓰럽고 그리운 마음을 털어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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