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 나태주 문화원장
예로부터 인간은 저 홀로 인간일 수 없었다. 인간끼리 어울려 인간이었고 자연과 더물어 인간이었다. 산천의 품속에서 인간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의 아들딸일 수밖에 없고 자연을 닮을 수밖에 없다.

자연이 유순하다면 인간도 유순하도록 되어 있고 자연이 험하다면 인간 또한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으리라. 산과 강. 그는 적어도 한국인에게는 부형(父兄)의 품격에 버금가는 대상이다. 산이 아버지라면 강은 어머니이다.엄하면서도 자애로운 아버지이고 살갑고도 정이 넉넉한 어머니이다.

공주 사람들에게 계룡산과 금강은 그야말로 큰 품을 지닌 아버지 같은 산이고 어머니 간은 강이다. 공주 사람들은 그가 의식하든 안하든 그 마음속에 계룡산과 금강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아니, 계룡산과 금강의 품에 안겨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공주지역에서 눈을 들어 멀리 그리고 높이 보이는 산봉우리가 있다면 그것은 계룡산이고 계룡산 줄기로서의 어떤 봉우리이며, 발길 닿는 곳이라면 그곳은 금강이고 흘러드는 지천의 어디쯤일 것이다. 언제 어디서고 계룡산과 금강의 영역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주 사람들인 것이다.

계룡산. 산도 높지만 이름이 더 높은 산이다. 신라 시대 이래 오악(五嶽) 가운데 하나로 일러 왔다.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그리고 계룡산이고 지리산이었다. 그렇게 다섯 개의 산이었다. 조선 시대엔 중악(中嶽)으로서의 계룡산이었다. 상악은 묘향산, 하악은 지리산이었다.

지리적으로는 ‘차령산맥의 한 줄기가 금강에 침식되면서 형성된 잔구성(殘丘性) 산지’란 주장이 있고, ‘차령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이룩된 잔구성 산지’란 주장도 있다. 지도를 펼쳐보면 노령산맥이 북으로 뻗어 올라가다가 금강에 막혀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풍수지리에서 계룡산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금닭이 알을 품은 형태)이라 하기도 하고,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 (산이 고개 돌려 조상을 돌아보는 듯한 형태) 혹은 산태극수태극을 이루었다 하여 최상의 길지(吉地)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는 태백산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소백산맥)가 덕유산에서 치받아 북으로 올라와 계룡산이 되어 멈춘 것을 산태극으로 봄이요, 전북 장수・진안에서 발원하여 계룡산의 외연을 감돌아 서해로 흘러가는 금강을 수태극으로 보는 견해이다(서거정徐居正 ‘취원루기聚遠樓記’).

어쨌든 계룡산, 보통산이 아닌 산이다. 바라보기만 해도 사람으로 하여금 신령스러운 그 어떤 기운을 느끼게 하는 산이다. 무엇보다도 하늘로 치솟아 울쑥불쑥한 바위산의 봉우리들이 다른 그 어떤 산하고도 다르게 보인다. 이어진 봉우리들이 닭의 벼슬을 닮았다 해서 계룡산이라 이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초기 무학대사가 태조와 새로운 왕도자리를 보러 다니다가 계룡산을 만나 앞에서 밝힌 바, 금계포란형이란 말과 함께 비룡승천현(飛龍昇天形)이라고 말해 거기서 각각 ‘계’자와 ‘용’자를 따 계룡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계룡산 지역은 조선 시대 유력한 왕도 후보지로 선정되어 기초 공사가 진행되기도 했던 곳이다. 오늘날 계룡시 지역이다. 실제로 계룡시에 가면 왕궁의 초석을 볼 수 있다. 이 지역은 과거에 유사 종교와 신흥 종교의 집산지였다. 이는 ‘정감록(鄭鑑錄)’과도 관계가 깊다. ‘정감록’에서는 계룡산 일대를 혼란 시대에도 화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 ) 가운데서도 으뜸 지역으로 꼽았다.

그러나 1975년 국립공원 정화 사업과 1984년 육군본부(계룡대) 설치를 위한 정화 사업에 의해 계룡산의 종교촌 사람들은 산산히 흩어졌다.

계룡산은 산의 형상이 웅장하고 아릅답다. 23개 봉우리와 7개의 골짜기, 5개의 폭포나 소沼(혹은 추湫)를 품고 있다. 계룡산 봉우리 이름과 높이에 대한 기록은 자료마다 조금씩 달라 정확한 것을 찾기 힘들 정도다.

가장 정확하다고 여겨지는 자료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국립공주박물관,‘계룡산’, 서울:통천문화사, 2007).

천황봉(845.1m), 쌀개봉(829.5m), 관음봉(816m), 삼불봉(775.1m), 머리봉(773m), 문필봉(756m), 연천봉(738.7m),치개봉(664m), 황적봉(605m),장군봉(500m), 수정봉, 신선봉, 갓바위.

이상은 계룡산 줄기에 있는 봉우리들이고 그 둘레에는 다음과 같은 봉우리나 산들이 있다.

도래산, 도덕봉(534m), 백운봉, 빈계산(415m), 금수봉(532m), 관암산(526.6m) 등은 동쪽의 수통골 지역, 봉제봉(353m), 재차봉(526.6m) 등은 남쪽 지역, 꼬침봉(416m), 고청봉 등은 북쪽지역.

이 가운데에서 가장 높이 솟은 주봉(상봉)은 천황봉이다. 그러나 등반 대상으로서는 관음봉을 치고, 풍수상의 주봉으로는 삼불봉을 꼽기도 한다. 계룡산에 있는 폭포나 소는 또 이렇다.

 은선폭포, 용운폭포, 솟용추, 암용추, 사봉소류지.

계룡산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정리하여 보여 주는 건 계롱팔경이다. 호사가들이 만들어 놓은 언어유희 같지만 그런 대로 다시 한번 음미해 볼 만한 자료이다.

 제1경 천황봉(天皇峰) 일출(日出), 제2경 삼불봉(三佛峰) 설화(雪花), 제3경 연천봉(連天峰)낙조, 제4경 관음봉(觀音峰)한운(閒雲), 제5경 동학계곡(東鶴溪谷) 신록(新綠), 제6경 갑사계곡(甲寺溪谷) 단풍(丹楓), 제7경 은선폭포(隱仙瀑布) 운무(雲霧), 제8경 오뉘탑 명월(明月).

계룡산처럼 우리나라의 전통 종교들이 한데 모여 정답게 어울리는 산도 그다지 흔하지 않을 듯싶다. 그야말로 유불선 통합이다. 우선 산의 네 방위에 커다란 사찰이 하나씩 자리 잡고 있으니(동-동학사, 남-신원사, 서-갑사,북-구룡사 터) 불교의 산이다. 동학사 영역에 유교와 관계된 몇 군데 사당(숙모전,삼은각, 동계사)이 있으니 유교의 산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신원사 중악단에서 국가 규모의 산신제를 지내 왔으니 선교(혹은 무교)의 산이기도 하다.

세상의 그 어떤 억울하고 슬픈 귀신이 몰려와도 마다하지 않고 품어 주는 산이 계룡산이다. 그만큼 자애롭고 품이 넓은 산인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계룡산은 살아 있는 인간들에게도 매우 너그럽고 온유한 산이다.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조난 사고가 있었다는 소식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산이 바로 계룡산이다. 왜인가? 계룡산이 산맥과 연결되어 있지 않고 외따로 독립된 산이기에 그러하다.

산위나 골짜기에서 어느 쪽으로든 내려가기만 하면 마을로 연결되게 되어있다. 그러니 조난 사고가 일어날 까닭이 없는 것이다. 이만하면 아버지같이 어진 산으로서의 조건을 두루 갖춘 산이 아니겠는가. 이미 공주 사람들에겐 계룡산이 그냥 산이 나니라 존경이나 외경,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계룡산이었던 것이다.

저작권자 © 파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