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박노해의 시 중, '지문을 부른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가리봉동 공단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함께 동사무소로 가서 주민등록증을 갱신하던 중 일 때문에 지워져 버린 지문과 자신들의 처참한 상황이 겹치며 울분을 토해낸다는 내용입니다.

이 시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한 번쯤은 똑같은 국민임을 확인하며 주민등록 경신을 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 국민,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이죠. 그래서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모두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배워왔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제목을 한 번 보세요.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 국민을 그만두다니? 그게 가능한 일일까?

제목이 참 도발적입니다. 아니, 도발적이라기보다 불경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군요. 책 제목을 보고 발끈 화를 내실 분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뜬금없이 '문명'과 '문화' 개념을 이야기하면서 책을 시작합니다. '문명'과 '문화'라는 개념과 단어가 어떤 역사 속에서 만들어졌으며, 이것이 또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에 주목하는 것이지요.

저자의 주장을 따르면 서양에서 '문명'과 '문화'라는 오늘날의 개념은 근대적인 것이며, 그 둘은 상충한다고 합니다. 문명은 제1세대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프랑스에서 강조되었고, 문화는 후발주자를 대표하는 독일에서 강조되었다고 하네요. 문명은 보편적인 것, 특히 물질적인 것을 강조하는 데 비해, 문화는 특수한 것, 특히 정신적인 것을 강조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차이에도, 저자는 문명과 문화가 근대국가의 국민창출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봅니다. '문명'과 '문화'의 대결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문화'나 '문화국가' 슬로건의 기만성을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거죠. 그 결과 문화는 교묘히 탈정치의 탈을 쓰고 정치적 행보를 계속 밟아나갔다는 주장입니다. 내셔널리즘은 민족으로부터 도주하여 문화 속으로 몸을 숨겨 그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

저자가 이런 파격적인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아마도 그가 1934년 조선에서 태어나 패전을 겪어야만 했던 일본인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됩니다. 어쨌거나 모든 이들을 국민으로 포섭하는(혹은 포섭하는 것으로 포장하는),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하는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했던 박노해 시인의 시를 생각해보죠. 그 노동자들이 갱신받은 주민등록증으로 '똑같은 국민'임을 인정받고 있다면, 저 시에 담긴 노동자들의 울분은 무엇 때문일까요? 시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이 실제로 자신이 국민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느꼈을까요?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뭉뚱그리는 개념, '국민'. 국민이라는 이 거대하면서도 애매한 대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 걸까요? 이 책은 매우 중요하지만 신성함에 둘러싸여 누구도 쉽게 제기하지 못하는 질문을 과감히 던집니다.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은 계속 '국민'으로 살고 싶은가, 아니면 '국민'을 그만두고 다른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가?"

각가 니시카와 나가오(소개)

1934년 한국 평안북도 강계 출생. 교토대학 문학부 및 동 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비교사ㆍ비교문화론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리쓰메이칸대학立命館大學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전쟁의 세기를 넘어서-글로벌화시대의 국가ㆍ역사ㆍ민족(平凡社, 2002), ▲증보 국경을 넘는 방법-국민국가론 서설(平凡社, 2001), ▲국민국가론의 사정-또는 ‘국민’이라는 괴물에 대하여(柏書房, 1998), 공편저로 ▲글로벌화를 읽는 88개의 키워드(平凡社, 2003), ▲20세기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다언어ㆍ다문화주의를 계기로 해서(平凡社, 2000) 등이 있다.

그 밖에 공역서로 루이 알튀세르의 ▲재생산에 대하여-이데올로기와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平凡社, 2005), 린 헌트의 ▲프랑스 혁명의 가족로망스(平凡社, 1999)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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