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과 천장, 수도원 벽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을 새로운 기법으로 그려서
무려 51점이나 되는 많은 그림을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특별히 최후의 만찬 장면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베아토 안젤리코가 1440년에 그린 것으로 산 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것과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그리고 잘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그것입니다.
거꾸로 다빈치의 작품부터 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1459-1497년에 그린 거라고 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다빈치는 마태복음 26:20-25절에 나오는 대로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라는 말이 떨어지고 나서
일어나는 열두 제자의 반응을 그린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 그림은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아 성당의 식당에 있습니다.
다빈치는 천재적 그림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리스도의 얼굴과
특히 베드로의 두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림을 그리라고 준 돈을 다 투자하여
300구의 시신을 해부학 실험과 두개골 연구를 통해서 했답니다.
특히 가룟 유다의 얼굴을 찾아 수년 간에 걸쳐서 그린 역작인데
그림을 독촉하는 끈덕지고 무지한 수도원장의 얼굴이라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세 제자씩 서로 바라보는 표정이 심각합니다.
그림에 관한 유명한 일화
1491년 로마 교황청이 밀라노에 새로 지어진
수도원의 벽화를 그릴 유명한 화가를 찾고 있던 중
당시 이태리에서 명성이 높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부탁했다.
다빈치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위하여
실제 그림의 모델로 쓰일 사람들을 찾았다.
1492년 다빈치는 예수의 모습을 상징할 수 있는
깨끗하고 선하게 생긴 19세의 젊은이를 찾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후 6년동안 예수의 11명 제자 그림을
모두 다 완성한 다빈치는 마지막으로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모델을 찾아다녔다.
다빈치가 유다의 모델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 된
로마의 시장은 그에게 로마 지하감옥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를 추천했다.
다빈치는 한 죄수를 모델로 택하여 유다의 그림을 완성했다.
그림을 다 완성할 무렵, 그 죄수가 다빈치에게
자신을 모르겠냐고 물었다.
다빈치는 그 죄수를 처음봤고 모르겠다며 대답하였고,
그 죄수는 다빈치가 완성한 최후의 만찬 그림을 가리켜,
다빈치가 그 죄수의 예전 모습을 모델 삼아 예수님의 모습을 그렸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다빈치는 그 죄수가 6년전 그렇게 선하고
깨끗하게 생겼던 19세 소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얼굴이 성스럽고 깨끗했던 젊은이가
로마 최악의 살인마로 돌변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빈치는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었다고 하며,
이 그림 이후로는
예수에 관한 그림을 더이상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속의 예수와 유다 모델은 동일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