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자연미술가 안케 멜린(Anke Mellin)

▲ 안케 멜린.
언제부턴가 해마다 여름철에서부터 가을철까지 공주시내 지역에서 자주 만나는 서양 여인이 있었다. 중년을 훨씬 넘긴 나이인데도 매우 건장해 보이는 여성이었다. 멀리서 지켜 보건대 그 여인은 공주의 자연과 거리와 인간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지내고 있었다. 그 여인 자신이 그러는 것 같았다. 어느 사이엔지 공주의 자연과 공주 사람들과 공주의 거리 또한 그녀를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실상 이 문제는 일방의 문제가 아니라 쌍방의 문제다. 그녀 나름대로의 노력도 있어야겠지만 공주의 모든 것들이 그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보아진다.

이 여인이 바로 독일 출신의 아티스트, 안케 멜린(Anke Mellin)(1941년 출생) 여사다. 공주에 본부를 둔 ‘한국자연미술가협회-野投(회장 고승현)’가 한 해 걸러 주최하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 작품으로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뿐더러, 세계 각국으로부터 오는 아티스트들의 작품에 관한 서류를 접수하고 상호연락을 취하는 일을 담당하기 위해서이다. 말하자면 국제 섭외담당의 일을 보는 셈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격년제로 열리는 비엔날레뿐만 아니라 전시회를 쉬는 해에도 거르지 않고 한국을 방문한다.

2009년 10월 8일, 목요일 오전 11시 정각부터 공주문화원 원장실에서 만나 인터뷰의 시간을 가졌다. 통역은 야투의 고승현 회장이 맡아서 수고해주었으며 고 회장 자신도 인터뷰의 중간 중간에 발언해주었다. 그날의 아름다웠던 시간에 대해서 감사드리며 대화 내용을 정리해본다. (안케 멜린 여사는 2008년도 이준원 공주시장으로부터 명예공주시민증을 받았으며 심대평 우리 지역 국회의원으로부터 안미란(安美蘭)이란 한국이름을 선물 받은 바도 있다.)

나태주: 안녕하세요? 그동안 공주시내에서 여러 차례 뵈었습니다. 오늘 또다시 뵈어서 반갑습니다. 공주에 여러 차례 오셨는데 왜 공주에 오게 되시었는지요?

안케 멜린: 물론 공주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전에 공주에 왔을 때는 조그만 공주였습니다. 건물도 새마을 운동했을 때처럼 소박했고 가게들도 조그마했습니다. 선물을 주고받을 때에도 지금처럼 플라스틱 봉지가 아니라 종이봉지를 많이 사용했고 때로는 나뭇잎이나 그런 것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기억합니다. 지금은 상품화되어서 제대로 하는데 옛날에는 제 나름대로 봉지라든가 다양한 상품화되지 않은 방법으로 했습니다. 길에는 자동차가 거의 없었고 거리도 비어 있었습니다.

나태주: 왜 공주를 좋아하게 되시었는지요?

안케 멜린: 자주 오게 된 것도 물론 좋아서 왔지요. 올 때마다 변화되는 공주의 모습이 새롭고 흥미롭습니다. 사람들의 살아가는 생활상들이 자꾸 바뀌는 것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사람들이 둘러 앉아 있으면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데 공동의 화제를 두고 담소하기보다는 서로 핸드폰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서로는 조금 이야기를 하고 각자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야투 멤버들도 자주 모이는데 서로 이야기하기보다는 각자 바빠서 핸드폰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봅니다.

나태주: 외국인의 거울에 비쳐진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군요. 그러면 선생님은 공주의 자연을 특별히 좋아하시지 않았나요?

안케 멜린: 좋다기보다는 많은 공해 같은 것을 느낍니다. 계속 갈수록 더 느껴집니다. 공해로 인한 피해들이 느껴집니다. 많은 자동차 배출가스,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버려지는 것들도 눈에 띕니다. 예를 들어 소나무들이 노란 색으로 죽어가는 것은 공해 때문입니다. 1991년도 처음 왔을 때만해도 자연컨디션이 지금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야투그룹이 그때부터 자연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던 것들을 기억하고 나도 역시 자연을 생각하며 만나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나는 줄곧 같이 있었고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서로의 강한 유대감을 느낍니다.

나태주: 공주에 오셔서 제일 예쁘게 보신 산이나 강, 풍경이 있다면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안케 멜린: 제일 인상 깊게 본 것이 연미산 정상에 올라가서 저쪽 강이 커브를 틀어 흐르는 것을 보는 것이고 그 너머 보이는 계룡산입니다. 금강을 바라볼 때 이런 금강이 흐르는 것이 저 근원지로 가보면 많은 계곡이 있을 텐데 그것이 수만년 전, 그보다 더 오래 전부터 형성되어왔을 텐데, 하면서 흥미를 느낍니다. 그런 걸 항상 생각하면서 왜 이렇게 아름다울까 생각합니다. 왜 그런 감동을 나한테 주는가 생각하곤 합니다.

나태주: 참 명상적이고 철학적이기까지 한 말씀이시군요. 우리들은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은 생각을 하시는군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지점이나 경치는 무엇입니까?

안케 멜린: 공주의 에어리어(area)에서 갑사, 동학사, 마곡사도 좋지만 내게는 신원사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거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고 돌담장 같은 것들이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워 좋았습니다. 거기에는 상징적인 모습들이 있어서 나에게 특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벽돌 같은 것이 있어 노랑색도 있고 브라운도 있는데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게 좋았습니다.

나태주: 아, 신원사 중악단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상징이라고 하시니까. 중악단에 가면 노랑색깔과 브라운 톤의 벽돌로 된 담장이 있거든요. 궁중, 그러니까 경복궁 같은 데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문양도 있어요. 참 제대로 보셨네요.

안케 멜린: 처음 신원사를 찾았을 때 동네 아주머니들이 있었습니다. 미카엘 브렌따노란 독일의 작가와 함께 갔었는데 동네아주머니들이 이리 오라고 해서 곁에 앉았습니다. 앉아서 얘기도 하고 누워서 쉬기도 했는데 하루 종일 거기서 지낸 일이 지금도 마음의 따뜻함을 느끼게 합니다.

나태주: 그 때가 언제쯤 되는지요?

안케 멜린: 아마도 1995년도 정도일 겁니다.

나태주: 아, 그때 정도면 그랬을 겁니다. 하여튼 지금은 많이 변했어요.
(※잠시 고구마를 나누어 먹으면 담소를 쉼.)

▲연미산에 설치된 안케 멜린 작품.
나태주: 안케 멜린 선생님, 국선도 좋아하시지요? 우리 문화원 국선도 반에도 나오시는 걸로 아는데 언제부터 하셨는지요?

안케 멜린: 2000년도부터 해왔습니다. 올 때마다 저녁은 안 먹어도 국선도만은 거르지 않고 합니다. 지금도 이규호 선생님한테 배우는데 그 선생님 아주 좋으신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나태주: 국선도가 그렇게 좋으세요?

안케 멜린: 네. 매우 좋아합니다. 항상 똑같은 동작을 하지만 요가는 고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가만히 있는데 국선도는 단순하면서도 조용한 움직임을 하는 게 마음에 듭니다.

나태주: 앞으로도 계속 하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개인적인 문제를 여쭤보겠습니다. ‘자연이’, 2008년도 자연미술 비엔날레 때에 한국에서 안케 멜린 선생이 길렀던 진돗개 있잖아요. 그 개 잘 있나요? 그 때 독일로 데리고 간다고 하셨는데요.

고승현: 그 얘기는 제가 대신 설명해드리지요. 작년에 개를 한국에 놓고 가고 싶은데 자식같이 기르던 개를 자기처럼 사랑으로 길러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안케 멜린 여사가 알았습니다. 그래서 동물병원에 가서 예방주사로부터 피검사를 다 하고 개에 대한 정보를 식별할 수 있는 칩까지 넣었지요. 독일로 개를 가져가려면 3개월 전에 개에 대한 정보를 접수시켜 이상 없다 싶을 때 개를 받아준다 합니다. 거기서도 3개월 정도 격리시켰다가 주인에게 돌려준다 그럽니다. 경비가 100만원이 들고 항공료도 별도로 듭니다. 제가 그걸 알고 아니다 싶어 설득을 해서 개를 제가 다니는 교회, 초대교회에 놓고 갔지요. 갈 때 얼마나 울고 갔는지, 너무나 내가 미안해서 안쓰러울 정도였는데…… 그동안 계속 연락이 왔죠, 잘 있느냐고. 이번에 와서도 개한테 바로 달려갈 줄 알았어요. 왜 안 가냐 물었지요. 보는 순간 자기는 잠을 못 잘 것 같다 그래요. 그리고 여기에 머무는 것도 길게 있는 것도 아니고 두 달 있는데, 그동안 다시 재회했다가 그 상처를 어떻게 할 거냐, 그래서 망설이고 있다 그래요.

나태주: 그래도 보아야 하는데…….

안케 멜린: 보자마자 울 것 같아서…… 그러나 한번은 보러 갈 겁니다.

나태주: 그래도 보아야 합니다. 안 보면 그 개가 아주 잊어버릴 테니까.

안케 멜린: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절대 진돗개는 주인을 잊지 않을 겁니다. 개를 많이 길러 보았기 때문에 그걸 압니다.

고승현: 이 분은 동물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얼마 전에 갔을 때는 두 마리의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어요. 따님이 독일의 수의사예요. 병원에서 출생한 고양이가 눈이 한쪽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무도 가져가지 않으려 했대요. 따님은 하노바에서 사는데 이분은 함부르크에 살아요. 그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지요. 그런데도 그걸 보내 달라 해서 기르고 있었고요. 교통사고가 나서 고양이 한 마리가 다리가 부러지고 밑에 창자가 튀어나왔어요. 수술을 했어도 불구로 살아요. 그 두 마리 핸디캡 고양이를 기르더라구요. 사고 난 고양이를 25년 기른 거예요. 2007년도 제가 갔을 때, 더 이상 걷지 못하고 눈이 멀었어요. 그래서 간호사를 불러 이분이 안고 최종적으로 안락사를 시켰어요. 그 때 눈물을 흘리면서 저도 같이 마당에 묻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태주: 알아들을 수 있겠네요. 사실은 공주 이야기 보다 뒤에 이야기 한 고양이, 개 이야기가 좋네요. 그러면 끝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언제까지 한국에 오시겠습니까?

안케 멜린: 나는 계속 오고 싶습니다.

고승현: 그건 우리가 이쪽에서 초대하는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안케 멜린: 어제에 이어 오늘은 매우 흥미로운 시간입니다. 어제는 갑자기 이준원 공주시장님이 야투 사무실을 방문했어요. 앞으로 비엔날레 자연미술과 공주시가 어떻게 매치시킬 것인가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와 같이 이런 얘기를 하게 되어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 미술작품이 지금까지는 연미산이라든지 특수한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설치되었는데 어제 공주시장님과의 대화에서는 시내로 들어와 시내 곳곳에 자연미술작품이 설치될 수도 있다 해서 그 영역이 도심으로 들어오게 될 것을 좋게 생각했습니다.

나태주: 감사합니다. 오늘 즐거운 대화를 함께 나누게 되어 저도 매우 유익했고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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