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비평가가 뽑은 2010 올해의 좋은시

독 경

                                                                               고영민

저 꽃이 모두 져 내리면 오리라
벌과 나비를 물리고
향기를 물리고
들뜬 마음을 추슬러 나뭇가지에 가만히 푸르 잎을 매달쯤 오리라
긴 날을 지나 더 아득한 허공을 골라
아픈 몸으로 오리라

우리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날은 오지 않았다
이 저녁 나무는 꽂 위에
짙은 노을을 풀어 새로 기왓장을 굽고
흙을 이겨 붉은 지붕을 엮는다

마침내 기다렸던 이가 온다
잎에 가려진 가지 사이를 거닐며
잘 익은 과실을 따
입에 가져갈 때면
그게 꽃이었다고 말할 겨를도 없이
나뭇가지는 흔들리고
잎들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다

꽃이 빨리 졌으면,
벌과 나비를, 향기를 물렸으면,
꽃을 뭉개며
나무 한 그루가 환환 만벽을 풀고
엎드린 집들을 망연히 바라보며 서 있다가
어두 속으로 간다

 

※ 해설 : 문학평론가・고려대교수 이남호

꽃이 어서 지기를, 그 꽃에 달려들던 벌과 나비 그리고 그 꽃의 향기마저 어서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것들은 모두 들뜬 마음이요 번뇌이기에. 꽃이 지면 푸른 잎의 안정이 찾아오긴 하지만, 그러나 푸른 잎도 아름다운 결실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열매는 그다음에 온다. 열매가 맺으면 푸른 잎들도 나무를 떠난다. 어지러운 꽃은 그렇게 열매가 되었다. 이것이 남의 득도(得道)인가?

이를 위해서 나무는 늦은 봄날 애써 꽃을 떨어뜨리려 하고 있다. 꽃도, 벌과 나비도, 향기도 빨리 살져야 도에 이르는 길이 가까우니, 나무의 독경은 꽃이 지고 열매가 맺기를 바라는 염원일 것이다. 색과 향을 멀리해야 도에 가까워지노니.

※ 고영민 작가소개
1968년 충남 서산 출생
2002년 ‘문학과 사상’ 등단
시집 ‘악어’, ‘공손한 손’

현장비평가가 뽑은 2010 올해의 좋은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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