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비평가가 뽐은 2010 올해의 좋은 시 중에서

불구(不具)

                                                                                  강  정

하늘을 날아야 할 새가 가랑이 사이를 간질이다가

세상에서 가장 음습한 곳으로 멋모르고 날개 접었다

그건 정말 새일까?

모든 순간 나는 내가 아는 전부를 의심한다.
내가 기울이는 술잔과
내가 썼던 시(詩)들과
시들시들해진 내욕망이
발가벗긴 내 모든 기억까지도

그건 정말 나일까? 또는 나였을까?

의심은 천분보다 거역 못할 양심의 본성이다.
내 필사적인 오문(誤聞)들이 규정했던 미래가 과거의 희극인 줄 미처 몰랐었다.

새가 아랫도리에 누워 벌벌 떤다.
날아봤던 기억이 없는 날개를 자른다.

구름은 파랗다
하늘이 파랗다고 생각했던 게 오래된 착각이듯
나는 세상에서 가장 음습한 곳으로 마치 날개를 가진 네발짐승인양

뻘쭘하게 기어간다
투 머치를 경상도식으로 뭉개면 마치가 된다
모든 직유는 슬프다
모든 날개는 불쌍한 농담이다
기어가는 게 나는 것보다 어렵다
그럼에도,
바닥까지 가보려고 마음이 하늘을 더럽힌다
그 더러움이 깨끗하다

새를 죽였다
그 새는 자기가 죽었는 줄 모른다

하늘이 파랗다
모든 게 거짓말이다
비로소 새가 난다
웃자

 

해설 (문학평론가ㆍ아주대 교수 : 문혜원)
 

제목이 왜 “불구(不具)” 일까?

이 시 어느 곳에도 신체적 ‘불구’가 드러나는 곳은 없다. 불구인 것은 바꿀 수 없는 현실에 걸맞지 않음을 뜻할 것이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의심한다. 하늘이 파랗고 구름이 희다는 자연적인 진실부터 나의 욕망과 기억까지도, 아는 것은 모두 거짓이거나 거짓일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처럼 바닥부터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얻고 그에 따라 살아가도,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질문과 의심을 멈출 수 없다.

설령 의심이 모든 것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바닥까지 추락하더라도 그 추락은 차라리 순결한 것이다. 의심하는 것만이 나의 존재 증명이다.

그러나 나의 존재를 건 필사적인 의심은 순간 현실의 논리 앞에서 무너진다. “하늘이 파랗다/모든 게 거짓말이다.” 의심도 익숙해지면 매너리즘이 되는 것이다.

파란 하늘과 하연 구름이 떠 있는 현실에서 새가 날아오른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의심을 시작할 것이다. 웃자.

 

작가소개

성명 : 강정

1971년 부산출생

1992년 ‘현대시세계’ 등단

시집 : ‘처형극장’,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키스’

현장비평가가 뽐은 2010 올해의 좋은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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