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티고개’ 반대편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금강에 이르러 곤두박질 치듯이 1백여길의 벼랑을 이루니 이것을 창벽이라 부른다.
공주 근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꼽으라면 창벽을 빼 놓을 수 없다.

대전 방면으로 강변길을 따라 8km쯤 가다 보면 ‘말어구(馬於口)’ 마을을 지나게 되는데 사방의 산세가 어느 곳보다도 가파르다. 그도 그럴 것이 계룡산의 지맥이 동북으로 달리다가 금강에 가로 막혀 우뚝 솟아 오른 봉우리, 그것이 국사봉(國賜峰·392m)이다.

이 국사봉을 축으로 하여 서쪽 산허리에는 공주오현(公州五峴)의 하나인 ‘마티고개’가 뻗어 있고, 반대편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금강에 이르러 곤두박질 치듯이 1백여길의 벼랑을 이루니 이것을 창벽이라 부른다.

대평리 쪽에서 흘러오는 강물은 이 벼랑에 부딪쳐 서쪽으로 꺾이는데 이 지점, 약 1백20m 구간의 경치가 특히 아름답다.

봄철에는 바위틈에 진달래, 철죽 꽃이 다투어 피어나고, 무성한 관목 사이를 황금색 꾀꼬리가 넘나 들 때면 어느덧 싱그러운 5월로 접어들게 된다. 이곳에서 잡히는 잉어와 은어는 맛이 좋아서 진상품의 영예를 누려 왔었다.

어디 그 뿐인가. 가을에는 붉게 타오르는 단풍이 강물에 어른거리고, 겨울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만발한다. 비·바람에 깎인 기괴한 바위, 철 따라 갈아입는 바위 옷, 그리고 휜 모래밭, 고개를 들면 벼랑 끝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노송(老松)이 아스라하다.

선인들은 이곳의 풍광을 중국의 천하절경 적벽(赤壁)과 견주어 창벽이라 부르고, ‘푸르다’는 뜻을 강조하려고 반어(反語)인 ‘청벽(靑壁)’대신 ‘창벽(蒼壁)’으로 썼다.

1602년 충청감사 유근(柳根)은 공북루를 새로 짓고 ‘소동파는 적벽에서 놀았는데 지금 나는 창벽에 놀고(蘇仙赤壁今蒼壁)’라고 읊었는데 ‘창벽’은 이때부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창벽의 경치를 감상하려면 배를 타고 볼 일이다. 소동파(蘇東坡)는 적벽강에 배를 띄워 저 유명한 ‘적벽부(赤壁賦)’를 남겼지만, 아무리 범인(凡人)이야 풍류를 모른다고 하나 병풍처럼 둘러쳐진 창벽강에 일엽편주(一葉片舟) 띄워 보면 저절로 흥취를 아니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윤여헌 공주대 명예교수는 “이렇듯 우리 고장의 자랑인 창벽이 골재채취와 주민편의의 명분을 내세워 벼랑 밑에 길이 생기고 강 건너 모래사장은 없어진지 오래”라며 “이 때문에 암벽의 생태계는 변했고 허드레 잡초만이 자라고 있어 백사장이 없는 강안절벽(江岸絶壁)은 이미 승경(勝景)일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세수확보를 위해 부득이한 조치라고 강변할지 몰라도 한번 파괴된 자연은 복구가 불가능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라며 해마다 1천만명의 전 세계 관광객이 몰려드는 하와이섬과 와이키키해변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그 해변의 흰 모래는 돈 주고 호주로부터 1년에 10만t씩 배로 실어 오는 수입품”이라며 “이와 같이 관광지를 개발하려면 자연환경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하고, 자연을 보존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관광공주’를 소리 높이 외치면서 무지와 단견으로 소중한 자원들이 파괴되고 있어 부끄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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