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헌과 오희숙의 역사기행

▲옥룡동 대로변 신진가든 예식장이 자리하고 있는 골짜기를 ‘보통골’이라고 하며, 그 자리에는 ‘영빈정(迎賓亭)’이라는 다락집(樓閣)과 그 위쪽 골짜기에 남향으로 ‘영춘정(迎春亭)’이 있었다. 윤여헌 공주대명예교수가 설명하고 있다.
옥룡동 대로변 신진가든 예식장이 자리하고 있는 골짜기를 ‘보통골’이라고 한다. 그 까닭은 옛날 이곳에 ‘보통원(普通院)’이 있었기 때문에 얻게 된 이름이다.

원(院)제도는 고려조에서 조선조까지 이어져 왔으며, 주로 출장하는 관리들의 숙박소나 공용(公用)으로 여행하는 사람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각 요로(要路)나 인가가 드문 곳에 설치했었다.

기록에 보면 공주 근방에는 14개의 ‘원’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터전을 헤아리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공서원(公西院)’(우성면 용봉리)과 같은 지명이 그나마 지난날의 흔적을 남겨 줄 뿐이다.

‘보통원’은 2동의 건물로 구성됐는데 도로변(현 신축아파트자리)에 ‘영빈정(迎賓亭)’이라는 다락집(樓閣)과 그 위쪽 골짜기에 남향으로 ‘영춘정(迎春亭)’이 있었다.

벽을 판축(版築)하고 붉은 모래로 겉치장을 했는데 건물의 규모는 모두 14칸이었다. 그런데 두 건물은 각각 그 용도와 기능을 달리 했다.

‘영춘정’에서는 매년 입춘절에 토우(土牛)와 약간의 농기구, 채소와 과일 그리고 술과 안주 등 제수(祭需)를 장만, 농신(農神)에게 수령이 장졸(將卒)을 거느리고 제사를 지내는 한편 백성들에게 농사일을 가르쳤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농촌지도소’와 흡사한 역할을 한 셈이다. 이 밖에도 징수(徵收) 등 모두 ‘영춘정’에서 행하였다.

한편 ‘영빈정’은 숙식을 제공하는 곳이지만 오늘날의 호텔과 식당처럼 돈만 주면 누구나 이용하는 시설이 아니라, 손님을 맞거나 보내는 경우 품계에 따른 법도가 있었다.

가령 감사가 공용으로 왕래하면 장졸과 장리(長吏)는 깃발을 들고, 수령 또한 군복을 착용하고 군계까지 나가서 수인사(修人事)를 하게 되는데 군계에 위치한 ‘영빈정’은 바로 마중하거나 또는 전송하는데 따른 요식(要式)을 치르는 장소로 이용됐다.

‘보통원’의 창건 년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보통원’ 시를 남긴 김극기(金克己)가 고려 명종(1171~1197)때 사람이니 이로 미뤄볼 때 고려 때부터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보통원’ 중에서도 ‘영빈정’ 누각에서 바라 본 금강변의 경치는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누각 아래에는 ‘용못’(지금의 정원수를 가식해 놓은 자리에 연못이 있었다)이 펼쳐 있고, 수면 위를 쓸어 내듯 너울거리는 수양버들, 고개를 들면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 흰 모래밭, 그때 두루미 한 마리가 날아와서 물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이런 광경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하다. 
 

▲현재 신진가든예식장이 위치한 영빈관 자리에 눈이 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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