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여헌 회장이 금강살리기 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2009년 2월 고마나루를 바라보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공주·부여 역사유적지구 가운데 공주 고마나루가 4대강 사업으로 훼손,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윤여헌 공주향토문화연구회 명예회장은 “고마나루는 곰의 전설이 서린 곳으로 백제의 건국신화로 연결되는 신성시해야 할 곳인데 보를 설치함으로써 변형이 많이 됐다”며 안타까워 했다.

고마나루(또는 곰나루)는 공주시 웅진동 무령왕릉 서쪽에 있는 금강나루와 그 강변 일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지역은 서쪽으로 흐르는 금강이 방향을 갑자기 꺾어 남쪽으로 흐르는 곳으로 강변의 모래 벌과 송림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윤여헌 회장에 따르면 이전에는 공주에서 청양, 예산 등 서쪽 방면으로 가거나 반대로 서쪽 방면에서 공주로 오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 고마나루에서 나룻배로 건너야만 했다.

고마나루는 이렇듯 금강변에 있는 나루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지만 백제 때는 한자 ‘웅진(熊津)’으로 표기된 고마나루가 공주의 옛 이름이었을 뿐 아니라 왕성(王城)의 이름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런데 공주를 상징하는 고마나루가 ‘곰나루’로 불리고, ‘웅진(熊津)’, ‘웅천(熊川)’ 등 한자표기도 ‘곰’과 무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금도 ‘곰사당’이 있고 ‘곰의 전설’이 세인의 화제에 오르고 있다.

▲금강보의 지난해 겨울 모습이다.
고마나루에는 애틋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아득한 옛날에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강을 건너갔다가 여자 곰에게 붙들려 본의 아니게 동굴에 갇혀 곰과 살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여자 곰은 의심이 너무 많아 밖으로 나갈 때에는 동굴의 입구를 바위로 막아 놓고 나가곤 했다. 그렇게 수년간을 살아오다가, 아이까지 둘을 낳게 됐는데 하루는 곰이 방심한 틈을 타서 나무꾼이 동굴을 빠져나와 강을 건너오고 말았다. 이 광경을 바라본 곰은 다시 돌아오라고 애처롭게 호소했으나, 끝끝내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곰은 도망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다가 두 아이와 함께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그 뒤로는 죽은 곰의 원혼 탓인지 농사를 지으면 계속 흉년이 들고 배를 타고 나가면 물결이 세차게 일어서 배가 전복되는 등 마을에 안 좋은 일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죽은 곰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제를 지냈는데 그 후부터는 이 마을에 그런 일이 생겨나지 않았다고 한다.’

고마나루에 전해오는 ‘곰’의 전설은 단군의 웅녀탄생과 맥락이 연결되는 곰 토템사상의 표현이다. 그리고 곰 사당은 ‘곰’의 넋을 제사지내는 것이 아니라 ‘고마나루에 있는 사당’이라는 뜻이고 이곳에서 금강의 강신(용왕신)에 제사지냈던 말하자면 토속신앙의 전승임을 뜻한다.

이렇게 보면 고마나루 또는 ‘웅진(熊津)’은 나루 이름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공주의 옛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백제의 왕성을 뜻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이랴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백제 건국신화의 발원지이며, 산천을 경배했던 우리민족 토속신앙의 근원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으로 고마나루에서 하류로 불과 1㎞도 떨어지지 않은 공주시 우성면 평목리 금강보 주변은 옛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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