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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공주의 시인― 공주대학교 국어과 교수 이창섭 선생
나태주 공주문화원장  |  tj45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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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1.05  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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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창섭 공주대 명예교수.
이창섭(李昌燮) 선생. 한 때 공주교육대학의 국어과 교수를 지냈던 분이다. 그 뒤에 공주사범대학으로 옮겨가 교수로 있다가 신병을 얻어 이른 나이, 53세로 세상을 뜬 분이다. 나하고는 10여년 연상쯤 되는 분이지만 어떤 인연으로든(사제, 동문, 동향, 동직원) 관계를 맺지 않은 분이다. 다만 내가 충남지역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했으므로 70년대 이후, 몇 차례 공주교육대학에서 교사연수를 받을 때 이분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80년대 전반기에 공주교육대학과 한 울타리에 있는 공주교육대학 부속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여러 차례 만나 학생들의 문예작품 심사를 한다거나 국어교육에 대해 논의를 하는 자리 같은 데에서 만나 친분이 생긴 분이다.

만난 본 결과, 이 분은 무척 성격이 깔끔하고 밝은 분이었으며 매사에 사리가 분명한 분이었다. 부당한 일에는 울분을 토하기도 하고 작은 것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반응할 줄 아는 감성적인 일면도 있었다. 국어과 가운데서도 이 분의 전공은 어학 파트였는데 강의 솜씨도 여간 날렵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어학에 관한 강의를 능숙한 언변으로 잘 이끌어 가곤 했다. 생전에 뵈었을 때 별로 문학 작품 창작에는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시 한참 문단 등단이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 있어서 중등학교 국어교사나 대학교 국어과 교수들이 그 쪽에 머리를 돌리는 경향이었으나 이분은 그런 데에도 초연한 태도로 일관했다. 한마디로 말해 지사형의 인물이었다.

그런 그분이 일찍 세상을 뜨고 재직하고 있던 공주사범대학에서 국어교육과 학회지로 발행한 「국어국문학」10집에 그분 자신이 쓴 시 2편이 발표된 것을 접하고 내심 크게 놀란 적이 있다. 전해들은 말에 의하면 이창섭 교수가 투병생활을 하던 생애의 말년에 동문이면서 친하게 지내던 이 고장 출신의 시인 임강빈 선생이 댁으로 문병을 왔다가 돌아가면서 󰡐지루한 시간에 시라도 써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는 내용의 도움말을 해주어 그 권유에 따라 몇 편의 작품을 썼는데 그 가운데 두 편이라는 것이었다.

작품이 참 좋았다. 언어의 선택이라든가 이미지의 구성이 바르고 아름다웠다. 육신의 고통이 심했을 텐데 그 와중에도 이런 완벽에 가까운 작품을 쓸 수 있다니, 정신력의 강인함과 문학 작품 창작능력에 감탄이 나왔다. 무엇보다도 생과 사의 기로에 서서 사물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그분의 시선이 너무나 그윽하여 눈물이 났다. 이 두 편의 시야말로 공주 사람의 둥글고도 맑은 심성, 속내 깊은 인간세계를 잘 드러내주는 시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러니까 가장 공주 사람다운 시라고 보아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여기에 그 두 편의 시를 적어보고자 한다. 오늘에 다시 읽어보아도 마음이 저린 것처럼 아파오는, 참 아름답고도 진솔하고 또 따뜻한 시들이다. 마치 그림처럼 진실된 인생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겨울밤
홍시
빨간 얼굴에서
눈물이 흐른다.

내가 어릴 때
병석에 누우신
아버지에게 따다 드린
홍시

오늘은 딸이
홍시를 사들고 왔다

딸의 얼굴도 홍시가 되어
빨간 얼굴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

나도 울고
홍시도 울고
겨울밤도 울고.

― 이창섭, 「홍시」 전문

몸이 아프면
우리 부부는 둘이 다
아기가 된다.

아내는 나를 재우려다가
새근새근 잠이 들고
나는 아내 몰래
잠든 체하다가
살며시 이불을 덮어준다.

고요한 밤
까만 유리창에
아기별들이 매달려서
우리 두 부부를 엿보고 있다.

― 이창섭, 「부부」 전문

뒷이야기
이창섭 교수의 연보를 정확히 몰라 마지막 직장이었던 공주대학교를 찾았다. 우선 국어교육과 사무실에 들려 조교에게 여러 가지를 알아보았으나 워낙 옛날 분이라 모르겠다는 답변이었다. 학회지를 물어도 이름이 바뀌고 그래, 보관하고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알만한 교수들도 모두 보직에서 물러나 있을 뿐더러 학내에 머물고 있지 않아 더 이상 알아볼 길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대학본부 교무과를 찾아가 퇴직교수 이력서 철을 뒤져 겨우 이창섭이란 이름을 찾아내었다.

다행히 교무과장을 맡고 있는 분이 이 교수를 아슴아슴 기억하고 있는 분이라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어슴푸레하게 기억하고 있던 대로 이 교수는 53세에 세상을 하직한 분이었다. 1931년에 공주시 사곡면 신영리 198번지에서 태어나 공주사범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공주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교사, 공주교육대학 교수를 거쳐 공주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83년 3월 22일에 사망 퇴직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교무과장의 말에 의하면 이 교수의 장지 또한 고향인 사곡면 신영리, 통천포 건너편 야산 중턱이라고 했다.

이 교수야말로 공주 땅에서 태어나 공주의 학교를 다니고 직장 생활 또한 공주에서 하다가 서둘러 일생을 마치고 공주 땅에 뼈를 묻는 완벽한 공주인이다. 헌데도 흘러간 세월은 무정하여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새삼스럽게 무상감을 맛보게 된다. 우리의 생애나 흔적 또한 그러하리라. 허지만, 이 교수에 대해서 몇 가지만이라도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강 건너 공주대학교까지 갔다 온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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