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영수 연기향토박물관장.
금강변 연기 금남면 봉기리 1번지ㆍ동면 합강리 잿절

위치- 골뱅이 나루는 연기군 금남면의 봉기리와 동면 합강리의 잿절과 잇는 나루이다. 봉기리는 연기군 남면과 잇는 새여울 나루가 있고 육로로는 석교리를 지나 금남면 용포리로 통한다. 또한 충북의 청원군 부강면으로 가려면 부용리에 가서 부용나루를 이용한다.

동면 합강리의 잿절은 합강리와 월산리를 잇는 꽃벼루나루를 통하여 남면 종촌리를 갈 수 있고 상류 용댕이 나루가 있을때는 금남의 부용리와 통하였으며 육로로는 합강을 지나 미호의 청주방면과 황용리를 지나 부강으로 갈수있다.

골뱅이 나루는 봉기리 1번지인 금강변에서 남면 합강리 잿절과 잇는 나루로 두 마을은 인척관계가 많아 자주 왕래하는 들이 이용하였다. 즉 사돈관계로 왕래하는 이들과 석교, 반곡, 남곡, 석산과 연결되어 있고 장은 대평장(용포리장,4일,9일) 부용장을 이용하는이들이 이용하였다. 또한 합강리의 합호서원에 드나들던 사람들이 이나루를 이용하였으리라 짐작한다. 1일 이용하는 사람은 평균 50~60명정도이다.

▲ 사공 채창록씨.
▲ 골뱅이 나루.

이름- 골뱅이 나루는 봉기리 1번지에 배를 묶어놓고 사공이 그곳에 살면서 운영하였다. 사공이었던 채창록씨에 의하면 골뱅이라는 이름은 본기쪽 지형이 소의 코뚜레 형국이다. 소 코뚜레 모양의 골짜기가 변하여 생긴이름이다. 즉 소코뚜레의 소콜이 골이되고 뱅이는 배를 매어 두는곳을 지칭하여 합하니 골뱅이가 되었다 한다.

 1981년 연기군에서 발행한 연기실록(燕岐實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새나루
봉기리에서 남면 양화리로 건너가는 나루를 '새나루'라 부른다. 지형이 고양이 모양으로 되었다하며 그후 나루터의 위치가 약간 변하여 아래쪽으로 내려갔으므로 '새나루'라부른다. '고양이나루' '고이뱅이나루'라고 부르기도 한다.

위의 내용으로 보아 골뱅이라는 말은 고양이나루에서 변한말로 지형이 고양이모양이라 하였다. 즉 '고양이'가 ' 고이양이' 또 변하여 '고이뱅이'로 변하여 '골뱅이'가 되었다는 뜻이니 이또한 그럴싸 하다. 나루의 위치가 변하여 아래쪽으로 내려가 '새나루'라 부른다는것은 골뱅이 나루가 먼저 없어지고 양화리 앵청이나루와 연결되어 운영되었음을 알수있다. 앵청이 나루는 그후 계속 운영되었던것 같다.

▲ 골뱅이 나루 집터.
▲ 보석골 전경.
또한 1996년 조치원문화원에서 발행한 동면지(東面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고배나루(告拜津)와 꽃벼루 나루(花峴津)
합강리에 얼마전까지만 해도 '고배나루'가 있었고 '꽃벼루나루'가 있었다. 금남면으로 가는 길손은 금강의 고배나루와 남면과 공주방면으로 가는 미호천 하류의 꽃벼루나루가 있어서 뱃사공이 조그만 나룻배를 저어서 건너주었다.

위의 기록은 김재붕 선생께서 쓰신글로 나루의 이름이 고배(告拜)라 하였다. 이는 동면쪽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고배가 변하여 골뱅이가 되었는지 골뱅이가 변하여 고배가 되었는지는 알수없으나 고배(告拜)라는 '고하면서 절한다'라는 한자어를 써 놓았으니 이는 합강리에 있는 합호서원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붙인 이름으로 짐작이 간다. 즉 서원은 글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지만 선인에게 제사를 지내는 즉 절을 하는 곳이다. 그러니 고배가 세게 발음되어 골뱅이가 될수도 있다.

이로보아 골뱅이 나루는 사공의 이야기로는 소코뚜레 형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고 연기실록은 고양이형국, 동면지는 고배에서 유래 되었다 한다. 모두들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있고 발음또한 비슷하여 어느것이 옳다 꼬집을수는 없지만 대대로 그곳에서 사공일을 하셨던 채창록(82세)옹의 이야기가 사실과 가까울것 같다.
 

▲ 봉기리 전경.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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