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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평화기행 - 철원을 가다
이상호 공주세광교회 목사  |  sk84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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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8.26  07: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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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6.15 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대전본부와 경실련통일협회 주관 통일교육아카데미 기초과정 교육을 받으며 과정중에 평화기행으로 철원에 다녀왔다. 회비 1만원에 1박2일의 아주 짭짤하고도 의미있는 여행이었다.

8월 17일 오전 6:40 출발, 명숙씨를 대전 딸네에 맡기고 8시 평송수련원 앞에서 일행과 합류하여 서울에서 강의와 해설을 해 줄 민화협 통일교육위원장 이영동 선생과 함께 철원에 이르렀다. 군생활을 철원에서 했기에 더욱 기대가 되었는데 3사단 지역은 가지 않고 6사단 지역과 25사단 연천지역을 방문한다고 한다. 그래도 철원이라는데 의미가 있고 평소 쉽게 갈 수 없는 전방DMZ(비무장지대)를 가본다는데 가슴이 설렌다.

철원 냉면집에서 맛있는 비빔냉면(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에 육수를 적당히 부으면 물빔이 되기 때문)으로 늦은 점심을 하고 일정에 있는 고석정은 내일로 미루고 곧장 전방을 향했다. 일몰이 되면 전방지역(민통선 안)은 통행 자체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여기가 민통선이었는데 금년 초 풀었답니다.
평화기행인데 갈거냐, 말거냐로 논란하던 제2땅굴을 먼저 보기로 하였다. 1975년 3월 24일 철원 북쪽 13km 지점 군사분계선 남방 900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시 남침용 땅굴 발견이라 하여 뉴스에 굉장했었다. 길이 3.5km에 달하는 1시간에 약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가 통과할 수 있는 굴이기 때문이다. 분단의 아픔으로 생긴 비극의 현장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동송읍 중강리에 위치한 평화전망대를 찾았다. 1층은 전시관, 2층은 관람관으로 DMZ내의 자연상태, 궁예도성의 성곽, 평강고원, 북한선전마을을 전망할 수 있었다. 말없이 굳게 닫힌 철책선 너머의 비무장지대를 바라다보는 마음은 민족분단의 현실을 생생하게 바라보면서 여기저기 동족이 피흘린 고지 이야기 등 해설을 들으며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웠다.

그리고 조금 이동하여 철원두루미관(전 철의삼각전망대)과 경원선의 최북단 종착역인 월정역을 둘러보았다. 철의삼각지대란 철원-김화-평강을 잊는 삼각지대로 한국전쟁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있어서 많은 사상자를 낸 백마고지, 삼천봉 전투, 오성산 전투 등 많은 전투가 있었던 지대를 말한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문구와 함께 널부러져 있는 기차의 잔해와 유엔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인민군 화물열차가 구멍난 채 누워있어 분단의 현실을 실감케 하는 월정리역사와 녹슨 철로는 통일을 염원하고 있었다. 특히 월정月井 '달의 우물'이라는 지명에 얽힌 효녀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아주 옛날 후미진 골짜기에 오막살이가 있었는데 못쓸 질병으로 고생하는 홀아버지를 봉양하는 처녀가 있었다.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지시하는 집 옆 바위에 물이 고여있는데 달이 지기 전에 너의 손으로 천 모금의 물을 길어 아버님께 드리면 나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천번을 나르다가 지쳐 숨을 거두었지만 그 갸륵한 정성이 부친의 생명을 구했다는 전설에 따라 그 물이 고였던 자리를 '달의 우물' 즉 월정리라 불렀다는 얘기다.

   
▲지뢰밭이 많아요.
이번에는 철원읍 외촌리 철원역사지를 둘러보았다. 경원선의 중심역이자 금강산 전철의 시발점으로 부지 5만여 평에 서기관급의 역장을 포함해 80여 명의 직원이 근무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녹슨 신호기 하나만 진품이고 전쟁에 모두 폐허가 되었다니 '지뢰'밭이라는 표지와 함께 전쟁의 참화를 떠올리며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을 치게 만든다.

잔해가 조금 남은 제2금융조합, 얼음창고 등을 보면서 이곳 철원이 얼마나 큰 도시였는가를 말해 주었다. 구철원 동송읍에는 뼈대가 웅장한 노동당사 건물을 볼 수 있다. 3층으로 지어진 철원군 노동당사는 당시 가장 큰 건물로 지금도 굉장했던 역사를 느끼게 했다. 포탄과 총탄자국과 2,3층은 주저앉고 1층은 촘촘한 구조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근대유산으로 지정하면서 들어가 보는 것을 제한한다고 한다.

첫 날 끝으로 백마고지 전적지에 들러 기념비와 저 멀리 보이는 백마고지를 전망하였다. 위령비 앞에는 수많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왜 싸우는지 조차 알지 못하며 동족상잔의 비극을 불러 온 전쟁의 비극을 때마침 한줄기 소나기로 적셔준다.

그간 민통선 안에 있던 양지리 마을주민들이 운영하는 두루미팬션에 짐을 풀고 지극정성으로 만든 저녁상을 받았다. 잠자리는 조금 협소했지만 밥은 건강한 밥상이었다. 이어지는 강당에서의 특강 '철원과 한반도의 평화'도 생생한 사진과 함께 좋았다.

18일 새벽 일찍 일어나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양지교회도 들러보고 무려 108만 평의 큰 토고저수지도 둘러보았다.

   
▲철책도 보이고 저 멀리 평강고원도 보입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철원평야를 지나 고석정을 찾았다. 철원평야를 가로지르는 한탄강 중류에 위한 철원8경 중의 한 곳이다. 군복무시절 야외예배 장소로 찾았던 곳인데 많이 정비를 해 놓고 입장료를 받는 모습이 달라졌다. 일찍이 신라 진평왕과 고려 충숙왕의 유람지로, 의적 임꺽정이 은거하던 동굴 등이 있어 유명하고 경관 또한 뛰어나다.

끝으로 조금 이동하여 연천군 장남면 소재 고랑포와 승전OP를 둘러보았다. 임진강 나루중 하나인 고랑포는 군사지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고 승전OP는 1968년 124군부대가 넘어 온 곳이자 6.25 때 영국군이 많이 희생되어 엘리자베스 여왕이 내한했을 때 찾았던 곳이라고 한다. 역시 분단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근처에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릉이 있었다. 나라의 대세가 고려에 기울자 백성들의 피를 덜 흘리도록 왕건에게 넘긴 후 개경(성)에서 세상을 떠나 이곳에 묻히게 되었다고 한다. 1박2일 알차고 유익한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은 여행이었다.
   
▲아직도 정전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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