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공주문화원장.

청벽 그리고 은개

우리네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날들은 그 날이 그 날이기 쉽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기 쉽다. 보던 것 또 보고 하던 일 또 하고 만나던 사람 계속해서 만난다. 그러다 보면 일상성에 빠지게 되고 사는일 자체가 지루하고 따분하고 무미건조하게 된다.

무엇이든 낡은 것으로 보이고 새로운 것이라곤 없다. 그리움을 상실하게 된다. 어제 본 것을 또 보는 것이라 할지라도 새롭게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눈빛에 뜨거움과 새로움을 실어야 한다.

공주에 살다 보면 하루에 한 번쯤은 금강을 지나거나 멀리서 바라보게 되어 있다. 금강가의 산이나 골짜기를 바라보기도 한다. 날마다 보이는 풍경이므로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언제부턴지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풍경 몇 군데가 있다. 첫 번째가 청벽이란 곳이다. 청벽은 공주에서 대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절벽이다.

본래 이름은 창벽(蒼壁)이다. 사람에 따라 청벽(靑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절벽이라고는 하지만 깍아지른 절벽은 아니고 비스듬한 절벽이다. 계룡산의 한 줄기가 마티재를 타고 북쪽으로 내려오다가 금강을 만나 우뚝 멈춰 버린 형상이다. 할 말을 미처 다하지 못한 사람처럼 머쓱하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이 청벽 쪽으로 가는 도로는 금강의 남쪽 기슭을 타고 아주 높은 곳에서 아슬아슬하게 뻗은 도로였다. 그 위에서 바라다보면 금강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지금도 그 길옆에 우뚝하니 서 있는 쉰질바위(쉰 길 바위,높다는 뜻)가 그때는 저 아래만큼 보였으니까 오늘날 도로가 얼마큼 아래쪽으로 내려와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물론 비포장도로 시절의 이야기이다. 고등학생일 때 새벽어둠 속에 털털거리는 버스를 타고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길도 바로 댕댕이덩굴처럼 가늘게 뻗어 간 그 길이었다.

실은 석장리 박물관도 그때가 초행이었다. 시화전에 나온 시들을 훑어보고 나니 날이 어두었다. 일행과 떨어져 잠시 강물 쪽을 바라다보았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 깔리고 있는 강물 위엔 아직은 환한 기운이 남아 물비늘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무심한 눈길로 그 강물 건너편을 바라다보았다. 청벽이었다. 까닭도 없이 가슴이 콱메어 왔다.

울음 같은 것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려 했다. 열린 공간 너머의 막힌 공간이 내 마음을 서럽게 했다. 산의 푸르름이며 물빛의 서느러움이 더욱 그렇게 했다. 저 산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누가 살고 있을까? 까닭도 없이 그립다는 마음이 일었다. 그렇다. ‘까닭도 없이’다.

다만 서럽고 고적하고 그리움 마음. 청벽이란 곳이 그런 곳이다.

그 다음으로는 은개다. 오늘날 공주시외버스터미널이 자리하고 있는 금강 건너편에 서면 공산성이 아주 잘 건너다보인다. 일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있는 그대로 보인다. 그 공산성 풍경 가운데 아주 특별한 부분이 있다. 공산성의 동쪽으로 공원 지역이 끝나면서 마을로 이어지는 잘록하게 들어간 부분이다.

그곳에 뱀 꼬리를 닮은 꼬부랑길이 강에서부터 고개 쪽으로 헤엄쳐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그 길옆으로 인가도 보이고 비닐하우스 같은 것도 보인다.

그리고 고개 너머 마을의 지붕이 몇 개, 새하얀 아파트 건물도 보인다.

저게 도대체 어딜까? 저기를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얼마나 오랫동안 궁금한 마음 하나로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그래 큰맘 먹고 올봄엔 그곳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공주대교 옆 금강빌라에 자전거를 맡겨 놓고 슈퍼에서 물 한 병을 사면서 그 꼬부랑길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알아보았다. 슈퍼 주인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전혀 길이 없어 보이는 곳에 길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고간 듯 잘 닦여 있었다. 그 길에서 진달래 덤불과 생강나무 덤불을 만났다. 금강 물을 배경으로 하여 꽃을 피운 진달래와 생강나무는 그 분홍빛과 노란빛이 더욱 짙고 선명해 보였다.

산길이 끝나자 바로 금강 건너편 멀리서 바라보았던 꼬부랑길의 정체가 드러났다. 의외로 넓은 지역으로 잘 다듬어 놓은 농토가 있었다. 무당이 사는지 울긋불긋 깃발을 내건 집도 있었다. 밭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정자나무만큼 우람하게 자란 백목련이 새하얀 꽃들을 가득 피워 매달고 있는 모습이 무척 우아하고 눈부셨다.

그렇게 잘생긴 백목련 나무를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여기가 어딘가요?”
밭에서 일하던 노인에게 걸어 보았다.
“여기요? 여기는 응개요.”
응개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노인은 응개를 ‘으응개’라고 길게 끌어 발음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 귀에는 ‘응가’처럼 들렸다.
“이 마을 참 좋군요. 이 마을이 어떤 마을인가요?”

“보시다시피요. 여기는 마을이 아니고 그냥 밭이 있는 곳이오. 예전엔 고개 너머 아낙네들이 금강가로 빨래를 하러 다니던 길이 있던 곳이오.”

나는 꼬부랑길을 걸어 강물이 있는 데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거슬러 올라왔다. 멀리서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길을 한번 내발로 천천히 걸어 보며 두리번거려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갯마루에 올라와 보니 그곳이 바로 옥룡동, 시내 가까운 마을이었다. 뜻밖에도 그곳은 너무나 가깝고 친숙한 곳이었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길가에 있는 집 대문에 붙어 있는 푯발을 보니 거기에는 ‘은개길’이라 쓰여 있었다.

세상의 모든 그리운 것들은 조금쯤 멀리에 있다. 아득한 곳에 있다. 잘 보이다가 보이지 않다가 하기도 한다. 분명하지 않은 그 무엇이다. 그리움은 거리의 산물이다.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 행여 그리움의 실체를 확인하려 하지 마라.

그리운 것은 그리운 것인 채로 그냥 놔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올봄에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하고 만 것일까? 한차례 은개를 찾아가 보고 난 뒤로 은개가 결코 아득하게 보이지도, 그립게 보이지도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새롭게 얻은 것이 있다면 ‘은개“란 마을 이름을 알게 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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