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1933년) 조사 이후 잊혔던 29호분 실체 확인

송산리고분군 29호분 발굴현장 모습.

 

공주시(시장 김정섭)와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황인호)는 공주 송산리고분군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조사됐지만 그 현황과 위치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29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왕릉급 고분을 재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백제 웅진기 왕릉원으로 알려진 공주 송산리고분군(사적)에는 현재 무령왕릉을 포함한 총 7기의 고분이 정비되어 있다. 다만 기존 조사에 따르면 그보다 많은 수의 고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대부분 정확한 위치가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번 조사는 지난 2019년 공주시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송산리고분군 중장기 학술조사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추진한 공주 송산리고분군 학술조사의 첫 발굴조사로, 29호분을 포함한 남쪽으로 넓게 뻗어내린 정비구간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6호분에서 남서쪽으로 약 10m 떨어진 곳에서 29호분을 확인하였다. 29호분은 발견 당시부터 천장을 비롯한 상부가 모두 유실된 상태였지만 하부는 잘 남아 있었다.

29호분은 시신을 안치한 현실(玄室)과 연도(羨道), 묘도(墓道)로 이루어진 횡혈식 석실분이다. 현실의 규모는 남북 340~350㎝, 동서 200~260㎝로 상당히 큰 편인데, 이는 송산리 1~4호분과 유사한 규모일 뿐만 아니라 전실분인 6호분보다도 큰 규모여서 왕릉급으로 추정된다.

현실은 할석을 쌓아 축조한 후 내면에 회를 칠하여 정연하게 마무리하였다. 바닥은 벽돌을 사선방향으로 깔았는데, 이러한 방식은 무령왕릉 및 6호분과 같은 구조이다. 바닥에는 벽돌로 축조한 관대 2매가 확인되었는데, 동쪽의 관대(길이 약 250㎝)가 서쪽의 관대(길이 약 170㎝)보다 큰 편이다. 현실의 입구는 벽돌을 여러 단 쌓아서 폐쇄하였다. 연도는 현실의 동쪽에 치우쳐 축조하였는데, 연도 바닥도 현실과 같이 벽돌을 깔아 시설하였다. 묘도는 대부분 유실되어 약 2.7m만 남아 있는데, 묘도가 시작하는 부분에서 벽돌을 이용하여 축조한 배수구가 일부 확인되었다.
* 현실(玄室): 시신을 안치한 방
* 연도(羨道): 고분의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 묘도(墓道): 무덤의 입구에서부터 시신을 두는 방까지 이르는 길
* 관대(棺臺): 무덤 안에 관을 얹어 놓던 평상이나 낮은 대

29호분은 구조적으로 석실이라는 점에서 1~5호분과 같은 양식이지만, 바닥과 관대에 벽돌을 사용한 점에서 전실인 무령왕릉과 6호분의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송산리고분군 내 고분들의 축조 순서 및 위계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번 조사는 향후 복원과 정비까지 고려하여 29호분의 디지털기록화, VR 촬영을 수행하고, 유실된 상부를 복원하기 위한 3D 모델링을 실시하였다.

시와 문화재청은 7월 8일부터 14일 동안 진행되는 백제문화유산주간 29호분에 대한 현장 설명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정섭 시장은 “웅진백제 왕실의 자취가 깃든 송산리 고분군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기 위한 긴 여정의 시작이 29호분의 재조사”이라며, “앞으로도 백제 왕릉원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고 새로 확인되는 고분에 대한 보존과 활용방안을 깊이 모색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파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