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초 꽃.

 

요즘 지나가는 곳마다 망초 꽃과 씀바귀 꽃이 한창이다. 주말을 맞아 가까운 제민천으로 나가보니 야생화가 5월의 아카시아를 대신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흔히 달걀 꽃이라고 하는 개망초 꽃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꽃 춤을 추며 물결친다. 꽃을 꺾어 멋진 꽃다발을 만들어 소꿉장난하던 시절이 있어 망초 꽃을 보니 그 시절의 풋풋했던 소녀가 된다.

망초 꽃을 꺾어 꽃병에 힌 가득 꽃아 보니 근사한 카페 분위기가 되어 내 마음도 수수해진다. 망초는 들과 밭에서 집 앞 화단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물이다. 돌아가신 엄마가 알려주신 나물이다.

좋지 않은 것은 금방 잊어 버리라고 잊을 망(忘), 풀초(草)를 쓰는 망초나물이란다. 엄마는 이 나물을 먹으면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들을 잊어버렸을까를 생각해보니 새삼 엄마의 마음이 그리워진다.

어린 망초 잎을 뜯어다 나물로 만들어 먹는 것 외에는 그냥 밭에 나는 풀로만 여겨져 냉대받고. 집주변, 산과들, 어느 곳에서나 잘 자라는 덕에 잡초로 여겨진다.

잡초와 채소가 사람에 의해 갈라진다는 것이 왠지 불편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가만히 망초꽃을 쳐다보고 있으니 이 작은꽃들에게서 고향의 향수같은게 느껴져 더욱 정감이 간다.

풀로 취급되는 것들도 자연 생태계를 위해 꼭 필요한 것들임에도 잡초인 풀들은 그냥 뽑혀 버려진다.

 

씀바귀 꽃.

 

제민천 주변 다른 꽃들 사이로 피어있는 망초꽃과 씀바귀꽃이 하늘하늘 바람따라 움직이며 자기를 봐달라고 손짓을 한다. 가만히 보니 이꽃이 지면 저꽃이 피어나고 끊임없이 자연은 순환되며 우리에게 자기존재를 알리고 있다.

이 소박하고 순수한 아기같이 작은 꽃을 보니 내마음을 심하게 상하게 만든 친구가 생각난다. 사소한 일로 인해 며칠동안 서로 오기를 부리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느라 속이 상한다.

다른 이들에게는 망초 나물을 먹고 잊으라고 하면서 나 자신은 지난 일은 잊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 친구에게 망초 나물을 가져다 줘야겠다. 이 나물먹고 잊자고 해야할텐데 준비된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잊어버렸다. 그 친구에 대한 미움도 잊었다. 망초꽃을 보니 순수함에 모두 잊었다.

망초 나물을 많이 먹어서 미운 사람에 대한 미움도, 그리움도, 돌이킬 수 없는 일도, 슬픔도 모두 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른 봄에 호미와 바구니 하나 들고 산과 들에 나가면 금세 한바구니 가득차도록 뜯었던 씀바귀다. 겨우내 움cm렸던 몸이 땅의 기운을 받아 올라온 새싹으로 입맛을 다실 때 즐겨먹었던 나물이기도 하다.

먹거리가 흔해서인지 아낙네들의 손길을 피해 살아났던 씀바귀가 초여름이 되자 예쁜 꽃으로 ‘날좀 보소’ 하고 부르며, 내년 봄에나 만나주려는지 예쁜 꽃으로 인사를 하고 가려나보다.

 

 

 

노란색과 분홍빛을 머금은 하얀색으로 나를 홀린다.

이토록 작고 앙증맞은. 들여다 볼수록 맑아지는 꽃의 영혼에서 어쩜 그리 쓴맛을 낼 수 있을까. 망초나물에게서는 담백함이 풍기는데 씀바귀는 쓴맛으로 이맛살을 찌푸리게 만들면서도 은근히 당기는 맛이 있어 자연의 신비스러움을 실감하게 된다.

예쁘고 앙증맞은 야생화가 나를 미소 짖게 한다.
그 앙증맞은 표정이 나를 멈추게 하고 다양한 얼굴로 오늘 하루 피곤이 어깨를 짓누르던 나의 지친 인생을 내려놓고 쉴 수 있게 한다. 잠시 그곳에서 휴식을 누렸다. 아주 잠깐이지만 나에게는 보석 같은 휴식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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