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은 추운 겨울, 따뜻한 온돌방에서 이가 시리도록 찬 동치미국물에 면발을 말아먹는 겨울철 음식이었다 하는데 세월도 바뀌고 사람들 취향도 달라져 지금은 뭐니 뭐니 해도 찌는 듯 무더운 한여름에 먹는 냉면이야 말로 여름철 별미 중 별미라고 말할 수 있겠다.

지난겨울, 맛있는 복탕을 먹은 일이 있었는데 함께 음식을 드신 한 선생님으로부터 “이 집은 냉면도 잘해유. 이 집 사장이 육수를 직접 만들어서 더 맛있어유”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그때 여름이 오면 꼭 한번 맛을 보러 와야겠다 마음을 먹었었다. 허나 식당이 공주 끝자락에 위치해 있기도 하거니와 날씨도 계속 꾸물꾸물, 쉽사리 떠나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계제에 이 핑계 저 핑계 댈 것도 없이 약속이 확 잡히는 바람에 화끈하게 점심을 먹으러 자동차로 떠나게 되었다.

15분쯤 흘렀을까.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장님은 역시 그대로시다. 후덕하시고 믿음직스러운 아빠 같은 인상에 다시 한번 믿음이 간다.

 

큰 대접에 한가득 냉면이 나오는데 면발 위에 얹어진 고명이 어여쁜 연꽃 모양을 연상케 한다.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고 눈도 즐겁고 혀도 즐겁고 기분도 좋고. 그래서 그런지 분홍빛으로 물들인 무가 또 꽃잎같이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냉면은 흔히 면발이 주재료인데 육수, 양념 등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이집 냉면은 우선 육수부터가 정말 남다르다. 그동안 다른 집에서 맛보았던 육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조미료 투성이 성의 없는 맛이었던 국물이 조미료 맛이 강하지 않고 담백하니 맛나다.

냉면 맛을 좌지우지 하는데 먼저 육수가 빠질 수가 없지만 면발은 더욱 중요하다. 잘 삶아진 면발과 육수의 환상적인 궁합으로 맛있는 냉면이 탄생되는 거니까 말이다.

냉면의 면발은 메밀이 주원료다. 메밀은 별다른 보살핌 없이도 잘 자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곡식이다. 원래 북부지방이 원산지라 우리나라 강원도나 평안도 등 북쪽 지방의 별미로 음식에 이용되어 왔다 한다. 그래서 평양냉면, 함흥냉면이라 하는가보다.

메밀하면 가을의 메밀꽃, 메밀꽃 하면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생각난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표현이 생각난다. 소금을 뿌린 듯 하얗게 피어난 메밀꽃이 달빛 아래 펼쳐진 정경을 떠올리며 냉면의 면발 한 젓가락씩을 집어 올려 호로록 입에 넣는다. 그렇게 먹다보니 어느새 그릇은 텅텅 비어있다.

후식으로 나온 호박식혜는 보너스다. 안 그래도 면발도 다 먹고 국물도 많이 먹었는데 호박식혜까지 먹으니 부른 배는 더 부르고 양이 다 찼음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식혜의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다 해치운다. 빛깔도 예쁜 것이 맛도 야무지게 좋다.

냉면의 그 맛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아마도 근거리에 있었다면 몇 차례 더 먹으러 가지 않았을까, 아쉬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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