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 충남역사문화硏 실장 “무령왕릉 이후 백제관련 최대 발굴”

▲지난 2004년 백제 고분 6기가 한꺼번에 발굴돼 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공주 수촌리 유적지에서 7년만에 재개한 2차 발굴에서 백제고분 4기가 또 나왔다.
무령왕릉 이후 최대 규모인 대단위 백제 고분군이 공주에서 추가로 발굴돼 학계가 주목하고 있다.

지난 2004년 백제 고분 6기가 한꺼번에 발굴돼 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공주 수촌리 유적지에서 7년만에 재개한 2차 발굴에서 백제고분 4기가 또 나왔다.

백제시대 최고 지배층 무덤이 한꺼번에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로, 지난 1971년 무령왕릉 발굴 이후 백제고분 발굴사에 있어 최대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6월 30일부터 11월 26일까지 약 6개월간 일정으로 발굴조사를 진행 중인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조사팀은 백제시대 무덤(7-10호) 4기와 청동기시대 구덩이 5기, 초기삼국시대 구덩이 9기 등 총 23기의 유구를 발굴했다. 백제시대 무덤은 석곽묘 2기(7·8호분)와 석실묘 1기(10호분), 토광묘 1기(9호분)다.

특히 이 가운데 8호분에서는 금동신발 1쌍을 비롯해 옻칠된 단검, 곡옥(둥근 옥), 토기류가 나왔고, 7호분에서는 환두대도를 비롯해 재갈, 등자 등 마구류와 대호(큰항아리)와 광구호(입이 큰 항아리), 단경소호(목짧은 항아리), 고배(굽은다리 접시) 등의 도자기류도 다수 발굴됐다.

▲ 이훈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연구실장이 수촌리 고분군의 발굴 의의를 설명하고 있다.
이훈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연구실장은 2일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 일원 발굴현장 설명회자리에서 “이렇게 최고의 위세 품을 부장한 최고의 지배층들의 무덤이 이렇게 대단위로 발굴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당시 최상위층의 위세품인 금동신발이 지난 2003년에 이어 이번 조사에서도 발굴됐다는 것은 백제중앙권력이 수촌리 일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이는 곧 수촌리 일대에 강력한 지방세력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등자와 재갈 등 마구류가 발견된 것과 관련 “이를 통해 수촌리 지배층이 남녀를 불문하고 말을 타고 다녔음을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렇게 많은 유적과 유물이 나온 수촌리 유적지의 지금까지 발굴 진도는 약 30%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추가로 진행될 발굴에서 더 많은 유적과 유물이 출토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발굴이 백제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백제문화에 대한 산 교육의 장으로 활용토록 노력 하겠다”고 했다.

정재윤 공주대 교수는 “수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세력권이 형성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중앙과의 관계보다 수촌리 세력이 독자적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다는 점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사팀은 7-8호분이 부부 묘지일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10호분에서는 논에 물길을 내는 ‘살포’가 발굴됐는데, 이를 토대로 조사팀은 10호분 무덤 주인이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력이 매우 컸던 인물이었을 것으로 유추하고 있다.

한편, 수촌리 유적은 지난 2003년부터 2004년까지의 발굴조사에서 백제무덤 6기와 금동관 2점, 금동신발 3쌍, 금동허리띠 2점, 환두대도 3점 등 4-5세기 백제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된 바 있다

2일 열린 공주 수촌리 고분군 발굴조사 현장설명회장의 이모저모.

 

▲ 수촌리 유적지 전경.
 
 ▲변평섭(왼쪽)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과 이훈(가운데) 실장, 김승희(오른쪽) 국립공주박물관장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지난 2004년 백제 고분 6기가 한꺼번에 발굴돼 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공주 수촌리 고분군.
 
 
 
 ▲8호분의 곡옥(둥근 옥) 모습.
 
▲ 유적 발굴 현황이 전시돼 있다.

▲ 백제시대 7호 석곽묘 및 세부 출토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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