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영순 기자

정영순 기자. ⓒ
과거에 택시 기사들은 지역 민심의 바로미터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 꼼짝없이 앉아 종일 친구 삼는 게 라디오 뉴스이니 기사들의 머릿속에 저장되는 ‘상식’ 은 하드디스크급이다.

거기에 장관부터 노숙인 까지 각양각색의 손님들이 옆에 앉아 ‘카더라’ 통신부터 ‘팩트’ 까지 전해주니, 그걸 받아 ‘여론 백과사전’ 으로 분석해 내는 재주 역시 신묘한 수준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택시기사 체험은 단골소식이기도 했다. 노태우 비자금 폭로 이후 세간의 주목을 받다가 16대에 등원을 못한 후 택시기사로 변신해 ‘생활정치’ 에 뛰어든 박계동 의원도 차원은 다르지만 또 하나의 ‘택시 정치인’ 이다.

그러나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사통팔달 잘 뚫린 길에 내비만 틀면 아무리 시골 오지라도 손쉽게 안내하니 초행길도 걱정이 없다.
쏘카, 그린카 같은 공유경제차량이 등장하면서 대중교통으로 외지에 방문해도 얼마든지 내 맘대로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생활인’ 이다. 천원의 요금에 울고 웃어야 하는 우리의 이웃이고 서민들이다.

그래서 택시비 조금 더 올려달라고 시장실을 점거했고, 몸에 시너를 뿌리며 분신을 시도했다. 운행을 거부한 채 천막 농성도 했다.

결국 모든 단체행동을 접고 생업의 현장으로 돌아갔지만 기사들과 공주시가 남긴 서로의 내상은 크기만 하다.

예전 같으면 ‘택시들이 제 잇속만 차린다’ 같은 기사로 떠들 썩 했겠지만 요즘은 세월이 바뀌었다.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택시요금 올라도 안타면 그만이다. 기본요금이 얼만지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택시의 미래가 과연 있을지 의심을 해야 할 세상이다. 집집마다 승용차가 있으니 그렇다. 카카오카풀, 우버택시, 타다 등 여러 플랫폼 운송수단도 그들의 목을 죄고 있다.

택시기사는 언제 없어져도 놀랍지 않을 직종이 되어 버렸다.

시장을 졸라 당장의 요금인상을 좀 더 얻어낸다면 그들의 앞날이 편안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정부는 이미 사납금 제도 폐지를 골자로 한 택시산업 전반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택시 감차사업과 함께 택시연금제를 도입하려고 한다. 며칠 전엔 청장년층 개인택시 면허권 완화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정섭 시장이 결국 24일 정례브리핑에서 택시 요금 조정안을 재논의 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공주시 물가위원회’ 의 결정을 깨뜨리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자” 는 심정이었겠지만, 과거보다는 덜할지언정 아주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할 수밖에 없는 택시업계의 주장에 무너졌다는 점에서 공식 기구에서의 결정이 번복된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다.

만일 이 일을 계기로 택시업계가 원하던 요금인상을 받게 된다면 당장의 만족감은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시장을 내 편으로 만들고 앞으로 택시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볼 기회 따위는 스스로 걷어 찬 꼴이 됐다는 사실은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오늘만 사는 전략으론 공주택시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저작권자 © 파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