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 대전평생교육진흥원 대전시민대강사가 공주대 공주학연구원에서 특강을 펼치고 있다. ⓒ 파워뉴스

 

“공주에 나루 주막을 만들자”

최근 공주대 공주학연구원에서 열린 특강에서 박광수 대전평생교육진흥원 대전시민대강사는 이 같이 제언했다.

박 강사는 “눈을 뜨면 금강만 생각한다”면서 ‘금강의 나루’라는 주제로 오랫동안 수집한 자료 등을 토대로 특강을 펼쳤다.

 

▲ 고마나루 전경. 사진=박광수 강사의 ppt 자료 캡쳐.ⓒ
▲ 사진=박광수 강사의 ppt 자료 캡쳐. ⓒ

 

자료에 의하면 공주의 나루는 고마나루, 반여울나루, 새나루, 마어구나루(마암나루), 장깃대나루, 음암진(음암나루, 산성나루), 불티나루, 석장나루(금벽나루), 오얏골나루, 장깃(기)대나루(금강나루) 등 18곳이다.

 

▲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삼강주막' 모습. 사진=박광수 강사의 ppt 자료 캡쳐.ⓒ

 

박 강사는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삼강주막’의 사진자료를 제시하며 “공주나루(고마나루)에도 주막을 만들어 국밥, 막걸리, 파전 등을 팔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지역경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인조, 현종 임금도 건넜다는 유래가 있는 고마나루는 당시에도 1일 이용객이 300여명이 넘었다는 것.

문화재청의 현상변경 심의 보류로 제2금강교 건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박 강사는 금강철교가설의 역사적 증거자료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자료에 의하면 금강철교의 역사는 아래와 같다.

▲ 사진=박광수 강사의 ppt 자료 캡쳐. ⓒ

▲ 사진=박광수 강사의 ppt 자료 캡쳐. ⓒ 파워뉴스
 

1920년 12월 3만 5천여원으로 가설한 배다리는 금강철교 가설로 인해 부여로 이전했다. 1920년대 공주 공산성 앞에 있던 금강목교는 공주사람들이 서울이나 대전으로 갈 때 이 목교를 건너 다녔고 홍수가 나면 고립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이 목교는 충남도청을 대전으로 옮기는 대가로 금강철교가 가설된 후 해체됐다.

금강철교는 1932년 1월 9일 착공, 1933년 11월 25일 준공했다.

그는 또 1950년7월 12일 금강철교의 폭파사진을 공개하며 폭파과정에 대해 ‘미 8군 제24단은 금강을 건너 철수한 후 진지를 구축하고 북한군과 대치했다. 7월 12일 공주에서 서쪽 10Km 되는 곳까지 강 하류에 있는 나루터를 수색해 나룻배를 모두 파괴하고 그날 밤 9시에 금강철교 경간(徑間:지주와 지주 사이의 거리) 일부를 폭파시켰다. 7월 13일 새벽 4시에 공병 중대가 전날 반파한 금강철교를 재 폭파시켰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덧붙여 금강의 명칭은 ▲백제시대=웅천(熊川,삼국사기), 사비하(泗沘河), 백강(白江) ▲통일신라=웅천하(熊川河, 경세유표 3권) ▲고려시대=공주강(公州江, 훈요십조) ▲조선시대=금강(錦江, 고려사지리지), 웅진(熊津, 세종실록지리지) ▲당나라=웅진강(熊津江)이다.

한편 이날 특강에 참여한 시민들은 박 강사한테 ‘금강 박사’라는 호칭까지 부여하며 특강에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 사진=박광수 강사의 ppt 자료 캡쳐.ⓒ 파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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