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 나루 주막을 만들자”
최근 공주대 공주학연구원에서 열린 특강에서 박광수 대전평생교육진흥원 대전시민대강사는 이 같이 제언했다.
박 강사는 “눈을 뜨면 금강만 생각한다”면서 ‘금강의 나루’라는 주제로 오랫동안 수집한 자료 등을 토대로 특강을 펼쳤다.
자료에 의하면 공주의 나루는 고마나루, 반여울나루, 새나루, 마어구나루(마암나루), 장깃대나루, 음암진(음암나루, 산성나루), 불티나루, 석장나루(금벽나루), 오얏골나루, 장깃(기)대나루(금강나루) 등 18곳이다.
박 강사는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삼강주막’의 사진자료를 제시하며 “공주나루(고마나루)에도 주막을 만들어 국밥, 막걸리, 파전 등을 팔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지역경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인조, 현종 임금도 건넜다는 유래가 있는 고마나루는 당시에도 1일 이용객이 300여명이 넘었다는 것.
문화재청의 현상변경 심의 보류로 제2금강교 건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박 강사는 금강철교가설의 역사적 증거자료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자료에 의하면 금강철교의 역사는 아래와 같다.
1920년 12월 3만 5천여원으로 가설한 배다리는 금강철교 가설로 인해 부여로 이전했다. 1920년대 공주 공산성 앞에 있던 금강목교는 공주사람들이 서울이나 대전으로 갈 때 이 목교를 건너 다녔고 홍수가 나면 고립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이 목교는 충남도청을 대전으로 옮기는 대가로 금강철교가 가설된 후 해체됐다.
금강철교는 1932년 1월 9일 착공, 1933년 11월 25일 준공했다.
그는 또 1950년7월 12일 금강철교의 폭파사진을 공개하며 폭파과정에 대해 ‘미 8군 제24단은 금강을 건너 철수한 후 진지를 구축하고 북한군과 대치했다. 7월 12일 공주에서 서쪽 10Km 되는 곳까지 강 하류에 있는 나루터를 수색해 나룻배를 모두 파괴하고 그날 밤 9시에 금강철교 경간(徑間:지주와 지주 사이의 거리) 일부를 폭파시켰다. 7월 13일 새벽 4시에 공병 중대가 전날 반파한 금강철교를 재 폭파시켰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덧붙여 금강의 명칭은 ▲백제시대=웅천(熊川,삼국사기), 사비하(泗沘河), 백강(白江) ▲통일신라=웅천하(熊川河, 경세유표 3권) ▲고려시대=공주강(公州江, 훈요십조) ▲조선시대=금강(錦江, 고려사지리지), 웅진(熊津, 세종실록지리지) ▲당나라=웅진강(熊津江)이다.
한편 이날 특강에 참여한 시민들은 박 강사한테 ‘금강 박사’라는 호칭까지 부여하며 특강에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