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 기자의 점심나들이

노오란, 그것도 샛노란 은행잎이 도로 위에도, 인도 위에도, 아직 떨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은행나무 위의 이파리들까지도 노랑 빛 천지다. 시야 전체가 온통 노랑 빛이다. 내 마음까지 노랑 빛으로 물드는 것 같다.

벌써 이렇게 올해도 가을이 가는구나. 무심히 왔다가 무심히 떠나는 가을은 사람의 마음을 울적하게 만든다. 지나간 날들을 잠시 뒤돌아보게도 한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가을이 절정에 다다랐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듯 온통 붉은 빛이다. 어느 누군가 그려놓은 화가의 작품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물감으로 알록달록 예쁘게 물들여 그려놓은 그림 같다.

점심시간. 공주 시내 옥룡동 지역을 벗어나 금강 길을 거슬러 잠시 대전 방향으로 달리다가 소학동 삼거리 주유소가 있는 지점에서 우회전하여 논산 방향을 잡는다. 거기서부터는 길가의 표지판에 주의를 기울이며 달려야 한다. 잘못했다가는 가고자 하는 음식점을 놓치기 쉽다.

곧장 달리다가 음식점 표지판을 확인하면서 오른쪽 샛길로 살짝 끼어들어야 한다. 그렇게 조금만 달리면 바로 찾아가고자 하는 집이 나온다. 오로지 묵을 소재로 한 음식 한가지로만 승부를 거는 집. 계룡산을 앞으로 건너다보면서 여러 차례 방송에도 나왔다는 음식점.

 

 

 

오늘의 점심은 상수리를 갈아 만든 묵밥. 어렸을 적부터 줄곧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상수리나무에서 자란 열매, 상수리는 낯설지가 않다. 지금도 우리 집 근처에는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있다. 상수리나무의 본래 이름은 참나무이다. 거기에 열리는 열매 이름이 상수리라서 나무 이름도 상수리나무라 부른다.

늦은 가을날, 바람이 불면 상수리 열매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상수리 열매들은 풀숲이나 언덕길에 숨어 있다. 어려서부터 그 상수리들을 줍는 일이 내게는 매우 재미있는 일이었다. 때로는 금방 떨어져 언덕으로 굴러가는 상수리를 따라가다가 넘어진 일도 있다.

가끔 윗집에 볼 일이 있어 갈 때, 떨어져있는 상수리를 주워 주머니 한가득 담고, 잠시 있다 내려 올 때면 그사이 또 엄청난 양의 상수리들이 바닥에 잔뜩 떨어져 있곤 했다. 그러면 또 욕심이 안날 수가 없는 일.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임시 바구니로 만들어 주워 담아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엄마는 그렇게 가을 한동안 모아 놓은 상수리를 빻아서 가루를 만들고 끓이고 여러 차례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엄마표 100% 자연산 묵을 만들어 주시곤 했었다. 그런 엄마의 손맛을 생각하면서 조금은 멀리 떨어진 외곽지역 묵 요리 전문점으로 점심을 먹으러 간다.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빨리 음식을 먹고 싶다. 묵밥에는 두 가지가 있다. 따뜻한 온묵밥과 새콤하니 시원한 냉묵밥. 쌀쌀한 늦가을이고 보니 당연히 따뜻한 묵밥이 좋다. 차가운 몸을 녹이려고 온묵밥을 찾게 된다.

우선 국물 맛이 깔끔하면서도 부드러워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수저로 묵을 떠서 입어 넣어본다. 한 입 먹기 좋게 썰은 묵의 미끈한 맛이 쫄깃하니 담백하다. 아, 이 맛. 엄마가 만들어주었던 그 묵의 맛. 비록 우리 자신은 잊고 있어도 혀는 그 입맛을 기억하고 있다. 이것이 음식이 주는 매력이고 힘이다.

묵밥. 배부르게 먹은 것 같지도 않은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배가 부르다. 마법 같은 음식이다. 오늘 점심도 이렇게 개운하게 묵밥 한 그릇 뚝딱, 배부르게 잘 먹고 났으니 하루가 다 만족스럽다. 우리는 다시 그림 속 같은 가을 풍경 속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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