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나루에 있는 한림정.
박완기(59) : 공주시 반포면 원성리 348-3번지
"사공을 하면서 보람있는 일도 많았어요. 장마철에는 물이 불어 배를 띄우지 않는데 급한일이 있을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들은 나루터에서 발을 동동구르지요. 그들을 태우고 건네주면 머리가 땅에 닿도록 고마워 하였어요. 그때에는 보람을 느끼지요. 장마철에 배를 잘못묶어 놓으면 종종떠내려 갈때가 있어요. 그러면 가까이는 불티나루, 마암나루, 석장나루, 혹은 금강다리에서 찾아오지요. 배를 찾아 올때에는 특별히 사례하는 예는 없어요.그냥 막걸리 한되를 받아주거나 고작 술한잔 값이 전부인데요. 그것은 우리도 합강나루나 앵청이 나루에서 배가 떠내려오면 배를 건져 주기 때문에 품앗이라고 할까? 서로 돕는 거지요."

신창수(70) : 연기군 금남면 영곡리 549-1 (노인회장)
"사공 박기태씨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는데 큰아들이 박선기, 둘째가 박선봉, 막내 셋째가 박완기여, 그중 둘째 박선봉은 마음씨가 좋아서 가끔배르르 운영하여 번돈으로 술도 잘사고 노는것을 좋아하여 동네 사라들과 어울려 화투놀이도 잘하여 사람들은 그를 잘 따랐지.
큰아들 박선기씨는 15살 때 결혼을 하였어, 부인이 나이가 더 많았으며 부인은 6.25때 피난온 여자 였지, 국민학교 6학년때 결혼하여 밤에 잘 때에는 부인옆에 같이자지 않고 어머니 옆에와서 잠을 자곤 하였어, 그래서 잠이 들면 그의 아내가 벌떡 들어 옮겨갔지, 꼬마신랑이라고 놀리기도 했어."
" 정자를 지은후 주막이 생겼어, 주막도 사공이 있는곳과 정자앞 두군데가 있었지, 정자앞에 있는 주막은 오래도록 하였는데 처음에하던 지현춘(90)씨는 1978년도에 용포리로 이사가고 염순자씨가 식당으로 운영하다가 2004년도에 고속도로가 나면서 보상받아 나갔지, 옥천으로 이사 갔고 아들은 용포리 두진아파트에 살고 있어, 지금 마을 이장보고 있는 신순균씨 장인 어른이 1965년도 추석날에 강가에서 놀다 강건너 머레사람과 욕설을 하면서 싸움이 붙었는데 바릇을 고친다며 술마시고 배도 타지 않고 거너갇 그만 물에 빠져 돌아 가셨어."

▲평산 신씨 세거지.
임복희(76) : 연기군 금남면 영곡리 2구 589번지
"나는 한림나루를 건너 시집왔어요, 6.25가 끝나고 2년이 지났으니 1955년에 이곳으로 시집을 왔지요. 당시 나는 19살인데 중매장이가 이곳마을에 사는 신범균과 짝을 맺어 주었는데 남편 신범균(76)은 작년에 돌아가셨어요.
결혼식하는날 무척 떨렸어요 신랑이 나룻배에 가마를 싣고 그것을 타고 내가 살고 있는 당암리 까지 왔어요. 우리집에서 첫날밤을 보낸후 신랑이 가지고 온 가마를 타고 머레가지 간다음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배에 가마를 싣고 나는 그 가마에서 나오지 않고 그대로 배에 탔어요. 가던 사람들이 구경도 하고 곱다고 이야기도 해주고 쑤군거리는 이야기도 들었지요. 강을 건넌후 신랑집에 와서 폐백을 드리고 살림을 시작 했어요. 와보니 시아버님께서 상투를 틀고 사시는 양반이었어요. 출타했다 돌아오시면 모든 식구가 나와 인사를 했고 매일 갓을 쓰기 위하여 머리를 감고 상투를 트는데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평소에 시아버지는 호랑이 같았지만 재미 있으셨어요. 대평장에 같이가면 술한잔 하라고 따라 주셨어요. 당시 길거리에서 대접술을 팔았거든요 그때 시아버지와 술한잔 했던것이 좋았던것 같아요. 아들 다섯을 낳았는데 둘째는 그만 죽고 첫째가 신재현(56), 셋째가 신현관(50), 넷째가 신동현(47), 다섯째가 신주현(42)인데 모두 외지에 나가서 잘살고 있어요."
 
▲한림나루.

▲조사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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