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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변의 한림나루-⓵
임영수연기향토박물관장  |  yghmuse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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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0.30  15: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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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변의 연기군 금남면 영곡리와 남면 송원리를 잇는 나루

한림나루는 연기군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나루이다.

이곳을 지나면 공주시 장기면과 반포면이며 산림박물관이 있다. 한림나루는 연기군 금남면 영곡리 즉, 한림정(翰林亭)아래에서 연기군 남면 영곡리를 잇는 나루이다.

한림나루라 이름 지은것은 금남면 영곡리에 조선중종때 한림학사(翰林學士) 신존미(信尊美)라는 사람이 을묘사화(乙卯士禍)에 연루되어 모든 관직을 버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은거(隱居)하던 중 이곳에 정자를 지으려고 터를 잡아 공사를 하던중 술에 취한 사람이 비아냥거리면서 말을 타고 지나가자, 일하던 사람들은 학자를 욕보인다며 가만두지 말것을 이야기 하자 신존미는 그의 관상을 보니 곧 죽을 운명이라며 만류하였는데 과연 갑자기 숲에서 꿩이 날아 올라 말이 놀래어 소리를 지르며 앞발을 들어올리자 그는 말에서 떨어져 금강으로 빠져 죽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일로 공사는 중단되고 터만 보전하다가 1962년 후손들이 그곳에 정자를 짓고 한림정(翰琳亭)이라 이름지었다. 이로 인해 나루의 이름도 한림나루가 된 것이다. 또한 한림진(翰林津)이라고도 부른걸보니 제법 큰 나루 였음을 알수있다.

   
▲한림나루
한림나루가 중단된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마지막 사공은 박노태와 그의 아들 박완기까지 이다. 박노태 씨는 한쪽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지만 노를 잘 저었다. 배가 운영될 때에는 정자밑에 모래가 쌓여있어 그곳에서 배를 띄었고 또 배를 제작할 때에도 그곳에서 작업을하였다.

배를 저어 강을 건너면 연기군 남면 송원리인데 그곳을 '머레'라고 불렀다. 마을주민들은 배를 타거나 안타거나 1년에 봄에는 보리한말, 가을에는 벼 1말을 배삯으로 내었다. 많이 타는 이들은 보리,벼를 2말씩도 내었지만 대부분 1말씩 내었다. 나루만 운영해서는 생활이 어려우므로 농사도 짓고 특히 주막을 운영하였다. 몸이 불편하여 아들 박완기가 대신 노를 저으면 박기태씨는 나루 주막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었다.

이곳 나루를 이용하는 이들은 금남면에서는 영곡리, 한양궁, 번개사람들이고 강건너는 송원리 '머레' 사람들이다. 하루에 20여명이 건넜으며 이곳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건널때에는 5원이나 10원을 받았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강건너 친척집에 왕래하는 사람들과 종촌리에 있는 성남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주를 이루었다.

뱃고사는 정월 보름날 지내었다. 제물로는 떡, 과일(밤, 대추, 대추, 사과, 배), 명태, 를 차리고 막걸리를 부어 제를 올렸다. 뱃고사는 해가 넘어갈 무렵에 지냈고 이곳에 이웃집과 두집만이 살았기에 제가 끝나면 두집이 나누어 먹었다.  박완기씨는 제를 지낼때 소지를 올리지 않았는데 그전에 어머니께서 살아계실때는 어머니가 소지를 올렸다고 한다.

소지를 올릴때는 맨먼저 배가 무사히 사고 없이 다닐수 있게 해 달라고 빌었고 두 번째는 사공집 가족이 건강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세 번째는 배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무사태평하기를 빌었다고 한다. 배는 1대를 가지고 운영하였으며 15명에서 20명이 탈수있는 배이다. 사공 박노태씨는 1983년 당시 77세에 돌아가셨으며 아들 박완기씨는 나루가 없어진후 이곳을 정리하여 공주시 반포면 원봉리 348-3번지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살고 있다.  그는 아버지 박노태씨가 6.25전쟁 전부터 배를 운영하였다 하고, 그 이전은 기억하지 못하였다.

신순균(59) ㆍ연기군 금남면 영곡리 584번지 (마을이장님)
"우리는 박완기가 친구이기에 명절날 동네 아이들과 배를 타고 강건너에 갔다 왔다 하며 놀았어요. 여자들도 태워 깉은곳에 이르렀을 때에는 남자들이 한곳으로 쏠리어 겁을 주면 여자들은 소리를 지르며 우는이도 있어 그렇게 놀기도 했어요. 또 머레에는 땅콩과 수빅을 많이 심었어요 배를 타고 건너가 땅콩은 한웅큼 뽑아 도망오면 주인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쫒아오다 배를 타고 건너오면 그냥 소리만 지르다가 갔지요. 여름에 수박서리도 마찬가지로 커다란 수박을 몰래 따서 도망오면 배가 떠날 준비를 하고있다가 배만 타면 주인은 더 이상 쫒아오지 못했어요. 요즈음 그랬다가는 밭농사 모두 물어주어야 하지만 그때에는 아이들이 그렇게 노는것이 인식이 되어 크게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또 비가많이오는 여름철에는 장마로 인하여 돼지나 나무토막이 떠내려오면 친구 박완기씨가 배를 저어 가서 그것들 건져내어 팔기도 하고 사용하기도 했어요. 그뿐만아니라 배를 타고 그물을 쳐서 물고기도 잘 잡았어요."
 
   
▲한림나루에는 고속도로가 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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