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축제로 붐비던 이곳저곳 행사장도 썰렁해지고, 누렇게 익은 농작물이 가득하던 논밭은 휑하니 쓸쓸함만 넘치는 벌판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논밭이 빈 크기만큼 우리네 마음은 풍요로워 지는 게 가을이다.
가을이 깊어 가면 농촌의 인심은 어느 계절 보다 후덕해 져서, 조금이라도 생활이 어려운 이웃에게는 무엇이든 나누어 주고 퍼주는 아름다운 일에 익숙해진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해도 따뜻한 나눔의 마음들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훈훈한 온기를 느낀다.
물질적인 나눔이 어려운 이웃의 경제적 생활을 돕는 것처럼 개인들이 갖고 있는 지식이나 기술과 같은 무형의 가치를 서로 나누는 일들로 우리의 이웃과 사회를 훈훈하게 만드는 일들도 있다.
이러한 문화를 우리는 기부문화라고 한다. 우리사회에 물질적 기부를 많이 해서 특히 어려운 여건의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기부천사들도 많다. 그런가하면 개인이나 동료들이 함께 갖고 있는 재능을 자신의 이익이나 기술개발에만 사용하지 않고, 이것을 활용해서 이웃과 사회에 기여하는 기부형태도 있다. 이러한 기부가 재능기부이다.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기부를 받아야 할 대상이 다양한 만큼 기부할 수 있는 재능도 다양하다. 돈이나 물건을 내는 기부가 단발성이 대부분인데 비해, 재능기부는 각자의 전문성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기부형태라는 점에서 한 단계 진화한 기부형태라고들 한다.
의료나 보건, 건강과 관련된 분야에서의 재능 기부는 질환치료, 스포츠마사지, 수지침, 등 의료 활동이나 의료 활동을 위한 후원 또는 보조, 보건위생이나 응급처치와 관련된 활동 등으로 재능기부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문화와 예술관련 분야에서는 문화예술관련 프로그램제공이나 전시회관람 등의 기회를 제공해 주거나, 사진이나 영상, 미용기술이나 환경 캠페인 등의 활동으로 재능기부가 가능할 것이다.
사회복지분야에는 복지관련 시설기관 봉사나 후원활동, 독거노인 돌봄 활동이나 지원 등이 있을 것이고, 상담이나 교육 분야에서는 각종결연활동 안내 또는 멘토링, 독서나 학습지도, 생활에 필요한 교육기회의 제공, 장학지원이나 심리상담 활동 등으로 기부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체육이나 교육활동, 집수리봉사, 엔지니어링, 기술제공 및 자문과 같은 체육활동이나 기술 관련분야에도 재능기부의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재능기부는 최근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1993년 미국변호사협회가 소속 변호사들에게 연간 50시간 이상 사회공헌활동을 하도록 방침을 정함으로써, 변호사를 쓸 여건이 되지 않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료 변론이나 법률상담 서비스를 해주는 기부활동이 시작된 것이다.
남들과 다른 능력이 무엇인지 자기 자신을 살펴보면, 우리도 이웃과 사회에 어떤 분야에서든 일조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매월 새로운 월간지가 나오면 시각 장애인을 위해 기사 읽기를 녹음해주는 성우의 재능기부활동, 매월 병원의 환우들의 쾌유를 위해 악기연주를 해 주는 연주동아리 회원들의 재능기부활동, 틈나는 대로 독거노인의 주택에 도배와 장판을 해 주는 도배기능인의 재능기부활동, 주말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어린이들에게 공 잘 차는 기술을 지도하는 체육인의 재능기부활동 등등, 이런 아름다운 기부활동들이 깊어가는 가을 우리의 마음을 더없이 따뜻하게 해준다.
국립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유아교육과 명예교수 엄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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