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

언제부턴지 평범한 점심시간이 특별한 시간으로 다가왔다.

한 끼 식사만 때우면 된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문화원 사무실 문을 잠깐 잠그고 나가는 발걸음은 기대에 차게 된다. 가는 길에 시장 구경도 하고 맛있는 집도 알아보고 말 그대로 점심시간에 나들이를 떠나본다.

겨우내 움츠렸던 생활 속에서 벗어나 따뜻한 봄을 맞이하여 나른함을 이겨낼 수 있는 봄나물이 가득한 보리밥을 먹기로 한다.

‘보리밥’하면 그 옛날 먹거리가 귀하던 가난했던 시절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한술 떠 입안에 넣으면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기만하고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던 보리밥.

6.25 전쟁 후 어느 것 하나 풍족한 게 없던 시절, 보리밥은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던 고마운 먹거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가난의 상징이었던 음식이 건강에 좋다는 연구결과가 알려지면서부터 일부러 찾아 먹기도 하는 별미로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보리는 비타민 성분이 풍부하고 백미보다 많은 식이섬유를 함유하고 있어 당뇨와 혈압에도 도움을 주며, 또한 이런 식이섬유는 포만감을 주어 음식의 섭취량을 줄이게 됨으로써 체중 증가를 억제하고, 체지방을 감소시켜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 보리밥 상. ⓒ 파워뉴스

이러한 건강식인 보리밥을 찾아 떠난 곳은 시장 안에 자리 잡은 뚝방 보리밥집이다.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장구경을 하면서 찬거리도 사고 엄마를 졸라 옷도 한 벌 얻어 입고 좋아한 기억은 있지만 시장에서 밥을 배불리 먹는다는 것은 약간은 생소하게 느껴진다.

시장안의 보리밥집은 과연 어떤 맛일지, 어떤 분위기일지, 궁금증을 갖고 걷다보니 가게 앞에 거의 다다랐다.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지 겉모습은 초라해 보였다. 여기에서는 어떻게 밥이 나올까, 좁지는 않을까, 안에는 손님이 많을까, 의아해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갖고 안으로 들어가니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제법 자리는 꽉 차있었다.

운 좋게 자리를 얻은 사람들은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었고 주인 아낙네들은 밥이며 국이며 반찬을 푸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나이가 지극한 남자 주인은 손님이 먹고 일어난 자리를 치우고 깨끗하게 새로운 손님을 맞느라 분주했다.

우리도 역시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먹을 수 있는 차례가 돌아왔다. 밥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기다리는 동안 배고픔은 더해만 갔다. 자리가 부족해 간혹 부엌 한켠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서 먹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그래도 맛있게 먹는 눈치였다.

자리에 앉고 쫌 기다리니 바로 밥과 국, 여러 가지 봄나물, 야채들이 상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오이, 냉이 등 10여 가지를 넣고 고소한 들기름도 듬뿍 두르고 작은 토기 항아리에 담긴 고추장을 넣어 비빈 보리밥은 꽤나 양이 많았다. 입안이 봄 향기로 가득했다. 함께 준비된 된장국과 10여 가지의 신선한 나물을 넣고 비벼 먹는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밥 한 공기 추가요!’를 저절로 외치게 만든다.
항상 서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살피는 남자주인은 반찬이 떨어졌는지 둘러보며 배가 부를 때까지 더 먹으라고 한다.

우리가 먹고 있는 사이에도 다 먹은 손님들은 일어나 값을 치르고 만족한 표정으로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떠난다. 또 그 빈자리는 금방 채워졌다. 요즘같이 사람냄새가 그리운 세상에 시장안의 이 보리밥집은 사람 사는 냄새로 활기가 가득 차 있다.

보리밥 한 그릇에 3,000원. 물가가 비싼 요즘 과연 이렇게 싸게 받아도 유지가 될까 싶지만 하루에 손님이 거의 100명이나 든다니 박리다매로 식당이 유지되는가 싶다.

우리가 밥을 다 먹고 구수한 숭늉을 마시고 나오는 길에도 계속 손님은 들어와 자리를 꽉 메우고 있었다. 오늘의 점심나들이는 이렇게 포만감으로 끝이 났다.    <김민영 공주문화원 편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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