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천

▲ 나태주 문화원장
공주시내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개울 이름이 제민천이다. 제민천은 그 뜻이 참 좋다. ‘제민’이라? 건질 제(濟) 백성 민(民).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불교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름이다. 정말로 개울이 사람을 주제해 주었는지, 아니면 백성을 구제해 주는 개울이 되어 달라는 인간적 소망이 담겨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개울 이름이 제법 의젓하고 편안하다.

제민천은 남쪽의 산기슭에서 발원하여 공주 시가지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금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작든지 크든지 도시 한가운데로 개울이나 강물이 흘러간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것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겐 유쾌한 일이고 축복 받은 일이기조차 하다. 그 강물이나 개울이 도시에 변화를 주고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도시의 품격을 높여 주기도 한다. 서울 같은 경우 한강이 없어도 서울일 수 있을까를 생각해본다. 서울에 한강이 없다면 서울의 효용성과 매력은 많이 떨어졌으리라. 아니, 도시 기능마저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공주는 제민천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민천을 따라서 서고 있다. 오거리 반짝 시장이 그렇고 재래시장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공주에서는 제민천을 중심으로 어느 쪽인지 그 방향과 거리가 중요하다. 공주에 와 처음으로 자리잡고 산 금학동은 제민천 상류에 해당하는 마을이고 공주시내 남쪽에 위치한 구석진 동네다.

제민천이라도 상류인 만큼 물이 맑고 좋았다. 자연 그대로, 천연 그대로의 물이 흘러가고 비가 와 물이 불면 모래와 자갈이 쓸리고 구불텅구불텅 물길을 흘러가는 그런 개울이었다.

그 당시 금학동 토박이들은 제민천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또 활용하며 살고 있었다. 특히 아낙네들과 제민천의 관계는 상당히 우호적이고 친밀했던 것 같다. 제민천은 마을 빨래터를 제공했고 채소 같은 음식물을 씻는 곳으로도 활용되었다.

아내만 해도 하루에 몇 차례씩 제민천을 찾으며 살았다. 집 안에서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싶으면 그땐 제민천에 나가 무슨 일인가를 하는 시간이다. 나도 아내를 따라 제민천을 자주 오갔다.

어떤 때는 우는 아이를 등에 업고 아내를 만나러 제민천을 찾기도 했다.

우리집에서 제민천으로 가려면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와 논두렁 밭두렁을 지나고 비탈진 길을 지나야만 했다. 조심조심 발을 내딛어야만 되는 길이었지만 제민천을 찾아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고 즐거웠다.

졸졸졸, 제법 큰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개울물, 제민천 맑은 물엔 여러 가지 물고기가 살았다. 모래무지 같은 것도 살았고 개울이 가다가 꺾여서 소를 이룬 곳에서는 장어나 메기, 자라같이 보기 드문 물고기들도 살았다. 지금 와서 얘기하면 거짓말 같지만 그것이 사실인 걸 어쩌랴.

그 중 제민천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띄던 물고기는 중태기이다. 중태기는 ‘중고기’의 충청도 방언이다.
왜 중고기인가? 스님들이 사는 정간 가까운 개울, 맑은 물에서나 사는 고기라 해서 중고기라는 설명이다. 아닌 게 아니라 중태기는 일급수나 이급수가 아니면 살지 못하는 까다로운 성격으로, 다 자라면 몸통에 얼룩얼룩한 점이 많이 보인다. 중태기는 봄에 알을 낳는다.

여름이 오고 개울에 물이 불으면 아주 작은 중태기 새끼들이 맷방석처럼 둥그스름하게 떼를 지어 놀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내는 그 중태기 새끼 몇 마리를 손바닥으로 떠 올려 빨래 그릇에 담아 집으로 가져와 유리병에 넣어 기르기도 했다. 아이들 보라고 그러는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금학동에서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제민천이다. 개울을 따라 완벽하게 수직의 옹벽이 둘러쳐 있고 중간 중간에 물막이를 만들어 놓았다. 공주가 워낙 좁은 바닥이고 벌일 만한 사업 거리가 부족해서 그랬던지 관청에서 손을 보았다 하면 제민천이다.

포클레인으로 개울 바닥을 헤집고 개울에다 쓸데없는 시설물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수중 생물들이 마음 놓고 살만한 환경에서 자꾸만 멀어지는 것이다.

우리 아파트 부근을 흐르는 제민천, 금학동 동사무소 앞에 지막골 연못이라 이름 지은 곳이 있다. 예전에 깊은 소가 있던 자리다. 거기엔 아직도 제법 많은 물이 고여 있어서 여러 마을의 물고기인 중태기가 아주 많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많던 중태기가 깡그리 사라져 버리고 없다.

놀라서 눈을 씻고 보면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다니는 커다란 물고기 두어 마리. 윣식을 주로 하는 외래종 물고기 베스다. 제민천 상류, 아직은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에, 중태기가 떼지어 놀던 그곳에 지금은 중태기 대신 베스만이 군함이나 되는 것처럼 위협적으로 떠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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