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정섭 (前대통령 비서관, 前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직대)

김정섭(前대통령비서관
前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직대)
곧 1천만 관객이 들 거라는 영화 ‘국제시장’을 봤다. 참 잘 만든 영화다. 관객들은 주인공 오덕수의 파란만장한 삶을 따라 울고 웃고 혀를 찬다. 1천만 이상의 관객이 본 영화는 역대로 열한 번째라고 한다.

최근에는 ‘변호인’ ‘명량’이 1천만 명 넘게 들었다. 다 그럴 만한 작품들이다. ‘국제시장’을 보면서 “그땐 그랬었지”라고 말하면 최소한 50대 이상일 테고, “와~ 저런 때도 있었구나.”라고 하면 아직 젊은층일 게다.

60, 70년대를 고단하게 살아온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헌신과 분투는 특히 광부와 간호사 파독과 베트남전 참여를 소재로 농도 짙게 그려졌다. 영화 끄트머리쯤에 나오는 이산가족 찾기 얘기는 아예 관객을 울리려고 작정했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상업영화는 원래 그런 거 아닌가 하고 받아들였다.

이런 영화 한 편이 사회의 통합과 세대 간의 소통에 기여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 세대, 계층 사이의 이해관계 차이 때문에 별의별 갈등이 좀 많은가? 드라마 <미생>은 요즘 20대들이 처한 비정규직의 삶, 곧 ‘미생’을 이해하게 해줬다.

영화 ‘카트’나 ‘또 하나의 약속’ 덕분에 대기업의 횡포를 보고 사회적 형평의 가치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영화 ‘변호인’은 민주화 세상이 저절로 온 것이 아니라 피와 눈물의 결과물임을 알려줬다. 이 영화 ‘국제시장’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했던 시대의 고단한 삶을 이해해주게 하는 미덕이 있다.

영화 ‘국제시장’을 두고 몇 가지 논란도 있지만,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가 겪은 고통에 공감하면서 세대 간에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 좋다고 본다. 다만 “후대들에게 미안하다, 이 정도의 사회밖에 물려주지 못해서. 이제는 너희들이 더 채우고 바꾸기 바란다.” 하는 시각까지 녹여내려고 노력했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영화 한 편으로 부산 국제시장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시장이 되었다. 설마 의도했을까? 영화의 빅 히트는 관광객의 큰 증가로 이어졌다. 평소보다 서너 배 많은 이들이 온다고 한다. 특히 영화 속 무대가 된 ‘꽃분이네’ 잡화점은 인근 광복동, 보수동을 찾는 이들에게 필수코스로 추가되었다.

영화가 끝난 후 어두운 거리로 나오면서 공주 산성시장을 떠올렸다. 2백여 년이라는 역사성이나 규모는 지금도 전국에서 손꼽히지만 갈수록 쇠락을 면치 못하는 산성시장. 이곳은 공주사람들의 삶의 못자리요 마음의 고향이다. 우리들이 자라고 뛰놀고 부모님세대의 땀과 눈물이 서린 산성시장도 한 편의 영화가 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본다.

해방과 분단, 6.25에 얽힌 가슴 아픈 이야기나 피난시절의 애환, 미군 폭격으로 무너졌던 금강교가 재건된 전후 이야기, 한 편의 역사추리소설 같은 송산리 무령왕릉 발굴 일화, 산성시장이 인근 8개 시.군으로 들고나는 물산의 집산지 노릇을 하던 이야기, 공주떡과 칼국수가 유명해진 유래 등등... 한국현대사와 산성시장의 삶은 그럴 듯하게 엮어 작품을 만들려면 우선 각본이 있어야 하니 시나리오를 공개 모집하면 좋겠다.

남들이 ‘국제시장’의 아류라고 타박하면 뭐 어떤가? 남이 예쁘다는 그릇에 우리 고향음식도 담아 먹어보고 싶은 심정이랄까. 단지 과거에 대한 애틋한 향수나 되새기자는 건 아니다. 우리 고장을 대표하는 노래나 연극, 영화 작품 하나 변변히 없는 터에 해마다 막대한 예산이 드는 각종 축제보다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수 있다.

기왕 영화를 만든다면 공주출신 대중스타들이 적절한 역할을 맡아 연기한다면 금상첨화이겠다. 연기인으로도 성공한 동방신기(JYJ)의 영웅재중(김재중), 모르는 사람이 없을 개콘 희극인 오나미, 감초배우 성지루, 왕년의 라디오스타 DJ 김기덕과 성우 김종성... 그리고 IMF 시대 한국인들의 기를 살려준 세계적인 스포츠스타 박찬호, 박세리가 깜짝 출연한다면... 그들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대 속에서 더불어 시름했고 그 결과 제 나름대로 성취를 이룬 공주인들이기에 관객의 감동은 훨씬 더할 것이다.

영화는 제민천과 공산성, 금강교와 곰나루 백사장, 옛 국립박물관(충남역사박물관) 언덕, 그리고 하숙집 골목들과 봉황 오거리를 오가며 찍게 될 것이고, 산성시장의 사계절과 잊혀진 근현대의 모습, 무엇보다도 할아버지, 아버지에서 우리들에게로 면면히 이어진 공주사람들의 얼굴에서 공주의 참DNA를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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