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공주대명예교수.
설 명절이 되면 고향을 찾고, 조상을 찾고, 부모형제와 친지들을 찾아 오가는 사람들로 해마다 고속도로가 붐비고 또 붐빈다. 부모형제를 만나는 기쁨, 함께 음식을 나누는 즐거움은 우리 모두가 명절 때 누릴 수 있는 일들이다.

설날 명절에는 차례도 지내고, 세배도 하고, 떡국도 먹고, 나이도 먹는다. 놀이로는 고스톱을 치기보다는 윷놀이도 하고, 널뛰기도 하고, 연날리기도 하며 모두들 서로 즐거운 덕담을 나눈다.

그런데 특히 설에는 다른 명절과 달리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특색 있는 세시풍경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조선 후기부터 수백 년 간 정월 초승이면 으레 토정비결(土亭秘訣)로 그 해 운수를 미리 보고 조심하며 근신하는 마음을 다잡아 본다. 생년 생월 생일이 같으면 똑같은 괘가 나오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풍습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렇게 정초에 자주 보는 토정비결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인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의 도참서(圖讖書)로 일 년 열두 달의 신수를 판단하는 술서(術書)이다. 이지함은 포천 현감과 아산 등지의 현감을 지냈는데 궁핍한 백성들의 생활을 보고 항상 가슴 아프게 여겨 선정을 베풀었으며, 그 구제 대책을 왕에게 상소하여 반영시키기도 하였다.

토정 이지함이 포천 군수로 임명 받고 부임을 하는데 베옷에 짚신을 신고 갔다. 포천의 아전들이 고을 원님의 남다른 모습을 보고 은근히 겁이 나서 음식을 정성껏 차려서 올렸다. 그런데 이지함은 수저를 들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먹을 것이 없구나.”
아전들은 당황해서 원님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저희 고을에는 별난 토산품이 없어서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 다시 차려 올리겠다.”
하고 상을 물려서 더욱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서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 올렸다. 그러자 이지함은 역시 수저를 들지 않고
“먹을 것이 없도다.”
하는 게 아닌가. 아전은 속으로 대체 이 양반은 한양에서 뭘 먹고 살았기에 이런 음식을 보고도 먹을 게 없다고 하는가 하고 화가 치밀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보다 더 잘 차릴 자신이 없어서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두 번이나 입에 맞게 해 드리지 못하였으니 미련한 저를 처벌해주소서.”
그러자 이지함이 말했다.
“백성의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은 높은 자리에 있는 관리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사치스러운 음식을 먹으면 백성은 굶주려야 한다. 그러니 잡곡밥과 마른 나물 반찬을 해 오너라.”
그 말을 듣고 아전은 ‘흥 며칠이나 가겠어’ 하고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지함은 부임이후 이임 때 까지 항시 잡곡밥과 나물 반찬을 먹었다. 그리고 고을의 원로들을 대접할 때도 역시 그렇게 대접했다.

그렇게 어려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결같이 고을을 다스리자 백성들의 살림이 넉넉히 변해갔다. 그가 임기를 마치고 고을을 떠날 때 고을 백성들이 모두 나와서 길을 막고 떠나지 말아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요즘 권력을 가진 국가의 관료들과 그들의 측근들이 미리 짜고 알려준 정보로 주식투자다, 주가조작이다, 부동산 투기다, 다이아몬드 게이트다, 하며 큰돈 벌기에 연루된 비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럴 때 더욱 토정 이지함 선생의 올곧은 삶이 존경스럽고 그리워진다.

설과 같은 명절을 맞아 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어디선가 굶주리는 안타까운 이웃도 있다는 걸 생각하며, 분수와 도리에 벗어난 일들은 삼가고 또 삼가야할 것이다.

설날이 되어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또는 직장의 근무 때문에 만나야할 가족을 만날 수도 없고 가야할 고향을 갈 수도 없는 사람들도 주변엔 많다. 이번 설에는 어려운 이웃뿐만 아니라 산업현장에서 또는 사회 공익을 위해 명절에도 열심히 근무하는 많은 이들에게도,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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