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나루

애당초 걸어서 가기로 작정했던 길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다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느낌으로는 가까운데 실제로는 상당한 거리엿던가 보다. 예전엔 누구나 걸어서 다녔던 그 길을 두고 이렇게 헤매고만 있는 것은 시절 탓인가. 어쩜 그 둘이 다 변했는지도 모르겠다. 흘러가는 택시를 붙잡았다. 자동차는 대번에 사람을 목적지에 데려다 주었다.

곰나루, 옛 이름으로는 고마나루 입구에서 차를 내렸다.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갈 참으로 그랬다.

반듯하게 포장된 시멘트 길을 몇 발자국 걷노라니 머리 위에서 낯선 새소리가 쏟아져 내린다. 찌르, 찌르, 찌, 찌르르, 그건 차라리 괴성이고 고함소리다. 운다기보다는 짖는다는 표현이 더 적당한 소리다. 아마도 녀석은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존재에 놀랐던 모양이다.

얼마나 사람을 보지 못했으면 새까지 저럴까 싶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길 양옆으로 조그만 마을이 있었다. 그 사이 집들은 깡그리 헐리고 그 자리에 코스모스를 심어 놓았다. 그러나 코스모스 꽃들도 한 해 치의 생명을 다 살았다는 듯 푸수수한 꼴이다.

저만큼 건너다보이는 수풀 어딘가에서 쓰르라미란 놈이 숨넘어가기 직전처럼 울다 말다 하더니 그나마 울음을 그쳐 버린다.

천천히 걸어서 다다른 소나무 수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하늘을 가리면서 서 있는 그곳.바르게 서 있기보다는 비스듬히 서로 몸을 기댄 채 서 있는 소나무들의 마을. 거기가 곰나루 솔숲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 북적댔고 연인들의 밀회 장소로 사랑 받았던 곳이다.

소나무 수풀도 소나무 수풀이거니와 그 앞으로 금강 물이 휘돌아 가면서 금강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모래밭을 만들어 보여 주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쓸쓸하다. 아무도 없다. 오직 바람 소리만 스쳐 지나갈 뿐. 사람들 발길이 끊긴 지 오래, 눈에 띄는 것들마다 후줄근 하다. 키 큰 소나무 가지에 매어 놓았던 기다란 그네가 끊어져 있다.

그넷줄을 매달았던 소나무 가지가 부러져 내렸다. 나뭇가지며 끊어진 그넷줄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어 마치 폐가에 들어선 느낌이다. 그래도 소나무 수풀 입구 쪽에 사람들의 마을이 있었을 땐 이렇게 버려진 듯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을씨년스러운 기분, 조금은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질퍽한 솔숲 길을 걸어 등성이에 올라선다. 저만큼 앞을 막아서는 커다란 건물이 보인다. 곰나루 수풀 속에 어인 건물이람? 그것은 소나무 수풀 사이 전망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는 음식점 건물이다. 곰나루는 공주의 상징이고 공주사람들의 자긍심이 숨 쉬는 장소이다.
더군다나 새롭게 가꾸고 바꾸겠다는 명목으로 요 아랫마을 집들을 여러채 철거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래 놓고 이렇게 음식점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은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음식점이 있는 자리가 개인 소유의 땅이라는데 자본주의 국가에서 재산권 행사를 하겠다는 걸 막아 낼 방법은 없는 일이다.

풍문으로는 행정 관청에서도 그 땅을 매입하고 싶은데 땅임자가 외국에 있는 관계로 쉽게 성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 씁쓸한 일이다.

음식점 마당을 지나쳐 곰사당에 가 본다. 곰을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아주 먼 옛날, 암곰 한 마리가 젊고 잘생긴 남자에게 반하여 함께 강 건너 연미산에 살았다 한다. 아이까지 둘을 낳았는데 어느 날 곰과의 싫증이 난 남자가 나루를 건너 도망을 가 버렸다.

놀란 곰은 아이를 보여 주면서 돌아오기를 간청했으나 남자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절망한 곰은 두 아이와 함께 물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렸다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곰사당은 열려 있었다. 대문도 열려 있고 사당 문도 열린 채였다. 마당 한편에 커다란 돌에 전설의 내용을 새긴 웅신단비(熊神壇碑)가 서있고, 곰사당 안에는 예전부터 보아 왔던 두루뭉술한 곰 상이 앉아있다. 들여다보니 사당 바닥에 비닐 방석 두 장이 깔려 있고 그 옆에 타월 한 장, 실장갑 한 짝이 버려져 있다. 누군가 쉬었다 간 자리가 분명하다.

또 다시 실망이다. 곰을 신으로 모셨으면 제대로 모실 일이지 사당 안을 이렇게 어질러 놓다니……. 일 년에 한두 번 제사 지낼 때나 관에서 높은 사람 행차할 때만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청소하고 다듬고 그러지 싶다.

공주에서 살다 간 타지 사람들더러 공주에서 가장 그럴듯한 곳을 치라면 금강 모래밭과 곰나루 솔밭과 공산성을 입에 올린다. 그 다음이 중동성당 건물이고 옛 박물관 벚꽃이고 우금티(우금치) 동학혁명군위령탑이다. 공주 사람들에게도 곰나루는 자랑스러운 지역이고 많은 추억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어떤 이는 곰나루 솔숲에 눈이 많이 내린 겨울날의 모습이 제일로 아름답다고 말하기도 한다. 눈을 뒤집어쓴 소나무 숲에 금강 쪽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이 실리면 신비스럽기까지 한 솔 바람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는 것이다.

지금이니까 그렇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이 부근은 그냥 깜깜한 시골 마을이었고 과수원이나 있었고 채소밭이나 있었던 지역이다. 송산리 옛 백제 무덤길을 지나 복숭아 과수원이 있었다. 봄이면 구름처럼 복숭아꽃이 피어났고 여름이면 복숭아가 익어 사람들을 불렀다.

그 과수원으로 가려면 나지막한 고갯길을 넘어야 했는데 그 고갯길에 하얀 마사토가 깔려 있었다. 나도 몇 번이나 친구들을 따라 그 길을 갔는지 모른다. 여름 한낮 햇빛이 비쳐 더욱 눈부신 새하얀 길로 젊은이들이 길낄거리고 장난을 치기도 하면서 걸어갔을 것이다.

다시 음식점 마당을 가로질러 곰나루 솔숲을 빠져나온다. 나오다가 잠시 뒤를 돌아보니 정말로 좋은 자리엔 음식점이 떡하니 앉아 있고 그 옆으로 비껴서 곰사당이 앉아 있다.

곰사당이 음식점 딸린 부속 건물처럼 보인다. 최근에 ‘백제큰길’ 이란 이름으로 길까지 새로 생겨 곰나루 솔밭은 금강과 도로 사이에 낀 섬처럼 되어 버렸다. 많이 속상하다. 곰나루 쪽을 바라볼 때 더욱 기분이 언짢아진다. 이런 마음인데 어찌 다시 곰나루 솔밭을 찾을 수 있겠는가.

마음에 새겨 기념할 만한 곳이요 자랑할 만한 곳이지만 이제 곰나루는 잊고 싶은 곳이 되어 가고 있음을 어찌하랴. 곰나루야말로 공주 사람들이 무던히도 사랑하고 아끼던 장소이다. 사랑이 깊었던 만큼 실망도 크고 슬픔도 깊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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