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님의 '또 다른 고향'…소설가 유재용 ‘타향에서 고향을 생각하듯’

또 다른 고향
                       윤동주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세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으로 가자.

 

타향에서 고향을 생각하듯

                                                                                                                            소설가 유재용

꽤 오래전부터 윤동주의 ‘서시’,‘별을 헤는 밤’, ‘자화상’ 같은 시를 대하며 감명을 받곤 했었다. 그러나 1994년 늦여름부터 초가을에 걸쳐 한 달 동안 중국 연변지방에 머물렀다 온 뒤로 윤동주의 시들은 나에게 새로움으로, 또 더 깊어진 의미로 다가왔다. 영화 ‘지바고’를 감상하기 전에 들을 때는 그저 그렇던 주제곡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들으니 심금을 울리던 것과 비교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북간도’라고도 불리워지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문득문득 내가 전생(前生)의 어느 때 연변지방에서 태어나 살았던 적이 있는 것 같은 감상을 가슴에 안아 보곤 했다.

우리 민족의 조상이 건국한 고구려의 고도였다가 몽고족, 만주족, 한족에게로 넘어가 남의 땅이 되어 버렸지만, 조선조 후기와 일제식민지 시대에 걸쳐 우리 민족이 이주해 개간하고 몇 대째 살아오고 있는 터전이어서 그곳에 몸을 담으면 감화가 예사롭지 않다.

세월과 역사의 단층 밑에 묻혀 있던 멀고 아득한 기억을 차근차근 헤쳐 보면, 이곳에서 영위하던 삶을 발굴해 복원해 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짙은 느낌에다가, 여기저기 남아 있는 선조들의 발자취 그리고 우리 민족의 풍속을 간직한 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 또 일상으로 대할 수 있는 우리말, 우리글들……. 그런 환경 속에 몸을 담았을 때,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또는 잊지는 않았지만 어런저런 사정으로 올 수 없었던 고향에 마침내 돌아온 것 같은 감회를 가슴 저리게 느끼게 되는 경우는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면 현세에서 내가 태어나 자라고 삶을 영위해 온 한반도는 오랜 예날 선조의 대에 이주해 간 타향이고, 본향은 연변일 것이라는 생각 속에 어색하지 않게 빠져 들어가게ㅔ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라는 소아(小我)에게는 한반도가 고향이되 대대의 조상을 아우른 대아(大我)에게는 북간도 연변지방이 고향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나를 휘감은 기시감으로 미루어 말한다면 한반도에 터 잡고 현재 삶을 영위하고 있는 나는 전생에서 지금의 나의 조상으로서 연변지방에서 삶을 영위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연변에서 삶을 영위하던 선조들은, 또는 나의 전생을 살았던 옛날의 나는 지금은 백골이 되어 연변 땅에 묻혀 있을 것이다. 연변의 산하가 되고 바람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중략)
어둠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윤동주 시인이 이렇게 읊는 것은 소아적으로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울분에 찬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 민족 지식청년들의 처지를 시어(詩語)로 형상화하려 함이리라. 그러나 대아적으로는 만주와 한반도를 아우르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의 한스러운 삶이 녹아들어 있을 터였다.

아니 윤동주의 시어 속에는 이미 소아적 고향과 대아적 고향이 아우러져 있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 고향이고 어느 쪽이 또 다른 고향일까. 한반도에서는 한반도가 고향이고 연변이 또다른 고향일 것이고, 연변에서는 연변이 고향이고 한반도가 또 다른 고향일 것이다.

나는 연변에 머무르는 동안 그곳 조선족 문인들의 안내를 받아 윤동주 생가를 방문했었다. 용두레우물과 해란강 일송정으로 우리 민족의 향수를 담고 있는 용정에서 남쪽으로 20킬로미터쯤 떨어진 명동이라는 마을에는 윤동주의 생가와 그가 다니던 명동교회가 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채 가을비 속에 남아 있었다.

어느 날은 조선족 동포와 함께 노선버스를 타고 밤의 두만강변을 달리면서 쏟아질 듯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무리를 바라보며 감회에 잠기기도 했었다. 윤동주의 ‘서시’와 ‘별 헤는 밤’의 구절들이 떠올랐고, 한편으로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의 노랫가락이 들려오는 듯했다.

연변에 다녀온 지 벌써 육칠 년이 되었고, 마치 나는 타향에서 고향을 생각하듯 연변을 생각하면서 윤동주의 시를 읽어 보곤 한다.

나를 매혹시킨 한편의 시에서(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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