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아.
‘물 건너간 公明選擧(공명선거)’……. 1993년에 발행된 한 일간지의 기사 제목이다. 우리 유권자는 1952년 최초의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근 60여년간 총 10회의 지방선거와 각종 선거들을 치러왔다.

해가 가고 치러낸 선거 횟수가 늘어날수록 우리 손으로 일궈낸 참정권에의 책임감은 높아져야만 하겠으나, 정치에 대한 불신을 자아내게 만든 부정부패의 사례도 적지 않았다. 백부와 조카가 같은 선거구에 동시 출마해 서로에 대한 비방을 퍼부어 유권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사례가 있는가 하면 합동연설회에서 특정 후보자가 동원한 청중단이 연설회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경우도 있었다.

기실, 비방전과 청중동원이 한두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후보들이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기보다 상대를 힐난해 상대의 지지율을 떨어트리는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해 선거에 참여해왔다. 잡음 많던 합동연설회가 2004년 선거법 개정으로 폐지되고, 정책선거운동 역시 많이 보편화되어 그때와 같은 촌극의 발생빈도는 현저히 낮아졌다 할 수 있겠으나, 후보자가 들고 나온 정책의 면면보다 소속 정당이나 출신, 유언비어에 매달리는 구태의연한 선거 풍토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혹, 매니페스토 운동이라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는가? 2006년 지방선거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매니페스토 정책선거를 공식적으로 시행하게 되어 이제는 예비후보 경선에서도 정책선거를 통해 평가받는 것이 일반화 되어가고 있다. 허나 여전히 매니페스토란 단어는 대다수의 유권자들에게 낯설고도 어색한 이름일 것이다. 그렇다면 선거관리위원회와 각 정당에서 적극적으로 실천을 독려하고 있는 매니페스토 운동이란 무엇인가.

매니페스토는 라틴어로 ‘증거’를 뜻하는 마니페스투스(manifestus)에서 유래한 말로 ‘과거의 행적을 설명하고 미래 행동의 동기를 밝히는 공적인 선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선거운동의 시작과 확립은 멀리 영국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1997년 노동당 당수 토니블레어가 ‘새로운 노동당’이라는 정당 매니페스토를 발표하여 선거에서 이기고, 2001년에 이전에 발표한 매니페스토를 자체 평가하며 그 연장선상의 또다른 매니페스토를 발표하여 연속집권에 성공하면서 이 운동이 영국은 물론 다른 나라로도 빠르게 확산되어 퍼져나갔다.

이후 일본이나 미국, 독일등의 나라에서도 매니페스토 정책선거를 각국의 상황에 맞게 변형해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매니페스토 우리말 공모 등을 통해 ‘바른 공약 실천운동’ 혹은 ‘참공약 실천운동’ 등으로 풀이한 전력이 있다.

매니페스토가 우리말 공모를 할 만큼 낯선 단어이긴 하나 매니페스토 정책선거의 실현 방법은 어렵지 않다. 선거에 임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유권자에 대한 계약의 의미로 구체적 목표, 추진 우선순위, 이행방법, 기간, 재원조달 방안을 명시해 공약을 발표하면, 유권자가 각 후보의 공약을 비교해 실현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를 선택하게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선거일 이후에 후보자(당선자)의 공약 이행상황을 평가하여 다음 선거에서 계속 지지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즉, 금번 선거의 정책 평가가 다음번 선거의 판도까지 바꿔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권자는 오로지 정책의 진실성과 차후 공약이행능력으로만 후보자를 평가하고, 후보자는 자신이 내건 계약을 성실히 이행해 다음 선거의 당선까지 보장받는다. 이 간단한 세 단계를 통해 우리는 ‘물 건너간’ 공명선거를 당당하게 뭍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c.go.kr/)에는 후보자가 자신의 공약을 대중에게 전달 할 수 있도록 정책ㆍ공약 알리미 탭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 중 ‘나는 후보자다’라는 코너는 후보자 스스로 간단한 공약과 활동사진 및 SNS주소를 올려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정책을 홍보할 수 있게 되어있다.

유권자 또한 별도의 가입절차 없이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각 시도 및 지역구 의원들의 중요 공약과 사진을 확인하고 후보자들을 평가할 수 있다. 출마자들은 가능한 법의 범위 내에서 자신의 정책을 유권자들에게 알리고 유권자들은 이를 통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공정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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