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주름살을 펴자... 전 총신대총장․목사 김의환

모세의 ‘시편’ 중에서

우리의 일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며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겐 우리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마음의 주름살을 펴자

                                              전 총신대총장ㆍ목사 김의환

내가 젊었을 때 즐겨 애송하던 시는 다윗이 지은 시편 23편이었다. 그러나 나이 들면서, 시편 90편 모세의 기원이 나의 기도가 되면서 자주 음미하는 애송시가 되었다.
특별히 이 기원시(祈願詩)를 더 애송하게 된 이유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때문이다.

나는 5년 전 미국에서의 20년 넘는 목회 생활을 마치고, 서울 사당동에 있는 총신대학교 초청으로 갑작스레 임지를 옮기게 되었다.

나의 귀국 소식을 들은 시골 중학 동창 몇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기를 원하여 나는 삼풍백화점 다방에 모이자고 제의를 하였다. 그러나 모이기로 한 시간에 갑자기 교수회의가 있게되어, 동창 친구들에게 하루 연기해서 같은 장소에서 보자고 연락을 하였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처음 모이자고 한 바로 그날 그 시간에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것이 아닌가. 우리는 다음날 약속한 대로 삼풍백화점 근처의 다방에서 만났다.

서로를 얼싸안고 다들 하루 연기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이란 사실을 감사한 마음으로 고백하였다. 한순간 앞을 볼 줄 모르는 연약한 인간임을 절감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또 한 번 놀랐다. 50년 만에 만난 우리가 서로 너무도 늙어 버린 사실과 벌써 동창생 중에 반 수 이상이 타계한 사실을 서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인생의 무상함과 세월의 신속함을 실감하는 순간들이었다.

모세의 시 “우리의 일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를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20년이 넘도록 사계절의 변화가 없는 LA에서 살았기 때문에 연령 감각이 없이 오랫동안 세월 흐르는 것도 모르고 살아온 나 자신을 새삼 발견할 수가 있었다.

친구의 늙어 버린 얼굴에서 나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내가 벌써 이렇게 늙어 버린 것을 이제야 깨닫고 오랫동안의 착각에서 깨어난 듯했다.

며칠 전 지하철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앞자리에 앉은 청년이 나에게 “할아버지, 앉으세요”하면서 자리를 양보하는 게 아닌가. 나는 문득 벌써 자리 양보를 받아야 할 할아버지로 취급받나 싶은 서글픈 생각이 들어, 끝내 양보한 자리에 앉지 않았다.

사람들은 늙기 싫어한다. 그러기에 좀더 젊게 보이려고 주름살을 없애는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얼마 전에 잘 아는 칠십이 넘은 할머니를 만나고 놀란 적이 있다. 지난날 뵈올 때보다 너무 젊게보여 그 연유를 물으니. 남편보다 늙게 보이는 것 같아 남편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얼굴의 주름살을 펴는 성형수술을 했다고 한다.

성형수술까지 하면서 젊게 보이려는 그 마음을 젊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과연 연령이나 얼굴의 주름살이 늙음의 결정적인 요인일까? 늙음을 성형수술의 칼로 끝내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막는 게 아니라 얼마 동안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에 불과하다.

성형수술로 자신의 얼굴을 잠시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자신의 마음을 속일 수는 없다. 늙는다는 것, 이것을 탓하며 잠시 얼굴을 숨긴다고 닥쳐 올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그 슬픔이 가려지랴. 일시적인 수술이나 치장으로 그 슬픔의 깊이를 감추진 못하리라.

반면에 얼굴은 늙어 가지만 그 늙어가는 시간 속에서 오히려 날마다 원숙을 만끽하고 보다 더 나은 영원한 내세를 바라보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예컨대 90세가 넘은 유형기 감독은 날마다 성경 원전과 씨름하다 성경 번역의 대업을 완료하여 세인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시인 롱펠로(H. W. Longfellow)는 80세가 넘어서도 감동적인 시를 써서 발표하였다. 그는 비결을 묻는 이에게 “사람도 나무처럼 보람있는 삶의 양분을 잘 섭취하면 계속 자라나 열매를 맺으며 살 수 있다.”라고 대답하였다.

살면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그리스도 안의 소망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인생의 봄을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삶의 보람이 없이 허무감이나 좌절감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리 젊은이라 할지라도 이미 인생의 가을을 살아가는 사람에 불과하다.

바울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겉사람은 후패(朽敗)하여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삶을 노래한다.”고 하였다. 그렇다. 영원한 소망을 바라는 그리스도인에게 육신의 은퇴는 있을지라도 영혼의 은퇴는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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