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의 님의침묵...국회의원 조세형,‘사랑’ 그 영원한 불변의 진리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이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사랑, 그 영원한 불변의 진리

                                                                                                            국회의원 조세형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영탄조의 첫머리부터 나는 심연과도 같은 아득한 체념과 절망을 느꼈다. 슬픈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는 감상도 가끔씩은 느껴 보는 나였지만, 이것은 그런 한가로운 슬픔이 아니라 영영 돌아올 길 없는 곳에 님을 떠나 보내는 절망과 포기와 심지어 반감이기까지 하였다.

내가 이 시를 즐겨 읽던 때가 17,8세의 소년시절이었으니, 딴에는 제법 조숙한 것이었을까? 어쨌든 나는 그런 절망감으로 이 한용운 시를 시작하였다가, 마침내 사람 운명의 일대 반전극이라도 보듯이 통쾌한 희망과 소망의 종장 구절에 이르러 나도 모르게 쾌재의 만세를 부르기까지 하곤 하였다.

그렇지, 선하고 죄 없는 사람에게 영영 불운의 운명이 씌워져 끝날 수는 없는 것이지!
“그러나 이별이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끈질긴 희망의 엑스터시를 향해 ‘님의 침묵’의 끝줄을 힘주어 읽게 된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거기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어 본다. 절망에서 소망으로, 소망에서 나는 결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는 자기 확신과 충족감으로, 이렇게 왔다갔다 하기를 한 열 번쯤 하면 가슴이 후련해지고 몸 안에서 슬픔의 찌꺼기도 다 소잔해지는 것을 체감하곤 했던 것이다.

소리를 내어 읽어야 좋았다. 영탄조로 읽어야 좋았다. 그리고 한숨을 푹푹 내뿜어대며 읽어야 더 좋았다.

나는 처음부터 한용운의 ‘님’이 도둑맞은 우리 땅이요, 빼앗긴 우리 조국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해(萬海) 한용운은 본래부터가 그런 생을 살아온 사람이었으니까…….

동학에 가담하고,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하여 핍박받고, 신간회 운동을 일으켜 싸움을 해왔던 그의 모든 이력이 그것을 잘 말해 준다.

그는 일 년을 더 기다리지 못하고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말았지만, 그 스스로 눈을 감을 때까지 결ㄷ단코 ‘님’을 보내지도 않았고 포기하지도 않았으며, 필연코 님의 귀향과 님의 부활을 믿는 가운데 님과 작별하였다.

작별의 마지막 순간에 지니는 상념과 믿음이 그 사람의 영원한 ‘현실’로 존속케 되는 것이라면, 한용운은 나라의 해방을 보고 죽은 사람이고 도 나라의 광복을 만세 부르고 죽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건 그렇다 치고라도 ‘님의 침묵’은 여전히 사랑의 시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님은 아리따운 나의 연인이기도 하고 또 사랑하는 나의 조국이기도 하는 두 겹의 상념 속에서 부침(浮沈)한다.

어떤 때는 소리 내어 읽으면서 두 가지 것을 다 함께 떠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 이중의 상념은 결코 서로 충돌하지 않으며, 오히려 함께 포개어지기도 하고 서로 손잡고 껴안기도 하면서 같이 간다.

과연 21세기의 현란한 새 천년을 눈앞에 둔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떠올려지는 ‘님’은 어떤 님일까? 이제 사랑은 어떤 가치로 변했으며 나라는 무엇으로 대치되어 있을까?

역사의 법칙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굳이 거부하거나 부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그 점, 즉 오늘의 사랑의 가치를 들어 보고 싶어 몸시 궁금하다. 그리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사랑’의 진수는 한 가지로 통해 있을까……. 나는 그것도 더욱 궁금해진다. 다만 한 가지만 부탁하자. 어느 곳 어느 시대에도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영원히 아름다운 것이라는 이 한 가지 진리만은 천년 만년 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확인하고 넘어가자.

나를 매혹시킨 한편의 시(문학사상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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