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으로부터 '인생유전'(人生流轉)이란 제목으로 메일을 받았다. 술과 도박으로 식구들을 가슴 졸이게 한 아버지 이야기, 움막집에 살았던 두 형님들은 가난에 시달린 어린 시절 이야기, 가난이 지겨웠던 형님들이 참 열심히 살았다는 이야기 등 흔히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목회자였던 작은 형도 정말 열심히 살았다. 출세하기 위해서 거의 미치다시피 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섬기는 목회가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았다. 어디까지나 사업에 불과했다. 차이가 있다면 큰형의 물질은 개인 소유였고, 작은형의 물질은 종교의 이름으로 등록된 공동소유일 뿐이다. 개인 돈을 잘 쓰지 않는다는 점은 공통분모였다.

문제는 형이 같은 목회를 한 동생네를 생전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주 안에서 후배는 있어도 형제는 없다고 했다니 무섭기까지 할 정도로 냉기를 느끼게 한다.

작은형 소천 후 장례식 기간 장조카는 5일간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작은 아버지가 식사 한 번 대접한 일이 없는데 조카로서 말없이 책임을 다한 것이다. 식이 끝난 후 작은형수에게 전화를 해서 “장조카가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번 기회에 양복 한 벌 해주면 어떠냐고.” 형수는 처량한 음성으로 “삼촌, 내가 그런 돈이 어디 있어. 해주고 싶어도 못해”하며 슬프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2006년 부동산을 팔아 수십억을 손에 쥐었고 큰 장학금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그 작은형수가 생을 마쳤다. 모든 걸 정리하니 현찰 및 부동산을 합쳐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재벌이었다. 누구를 위해서 소유에 집착했나. 형제들에게 이자놀이 하면서 까지. 목사가 머문 자리에서는 가급적 신령한 소리가 들려야 한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공황을 느낄 정도로 어안이 벙벙하여 일종의 상담을 요청해 왔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사람은 아름다운 마무리가 중요하다. 머문 자리가 아름다워야 한다. 물론 많은 물질을 남겨놓고 가면 유익하게 쓰여질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을 때 가까운 가족이나 이웃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기는 삶도 중요하다.

이에 반해서 지난 주 우리 교회에 와서 간증한 임원장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살아서 유(언)증문을 돌에 새겨놓기까지 했으니 특별한 일이다. 예수를 믿고 그의 말씀을 따라 언행이 일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우리를 감동하게 하는 것은 노동하시는 OO성도가 아프리카 오지에 교회당을 세우기 위해 거금의 헌금을 한 일이다. 나는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봉헌하려고 이름을 불렀다가 혼났다. 이름 밝히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실건데 공개해서 당황스러웠다는 얘기다. 또 다시 부끄럽고 감사하고 감동스런 이야기다.

일본의 오사카 고등법원의 형사부 총괄 판사였던 오카모도 겐은 1987년 36년 동안이나 재직했던 판사직에서 퇴임했다. 큰 사건들을 맡아 처리해오던 유명한 판사였던 그가 정년퇴임까지 5년이 더 남았는데도 일을 그만두자, 사람들은 모두 변호사 개업을 하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엉뚱한 곳을 찾아갔다. 바로 집 근처에 있는 요리학원이었다. 그는 요리사 자격증을 따서 음식점을 내겠다는 각오로 60이 다 된 나이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원을 나갔다. 그는 손자뻘 되는 젊은이들과 함께 칼쓰는 법과 양념을 만드는 법, 야채를 써는 방법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1년 만에 그는 요리사 자격증을 따내더니 자신이 일하던 법원 앞에 두 평 남짓한 간이음식점을 내었다.

유명한 판사였던 그를 알아보는 손님들은 많았다. 사람들은 모두 판사직을 그만두고 음식점을 낸 것을 궁금해 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재판관이 되어 사람들에게 유죄를 선언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나는 그 일을 36년이나 해 왔던 것이죠. 재판관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식당 주방장이 되더라도 남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행복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남에게 죄를 정하고 벌을 주는 일이 싫어서 남은 여생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며 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무척 행복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작은 음식점 이름은 '친구'이다. 그 이름 속에는 그의 음식점을 찾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은 그의 오랜 소원을 담고 있었다.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는 인생 마무리가 아쉽다. 과연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친구'로서 그냥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소박한 삶이기를 소원해 본다.

 

저작권자 © 파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