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공주대 명예교수.
연말이다. 가는 해를 보내고 오는 해를 맞이하기에 몸과 마음이 분주한 때이다. 더군다나 낮은 짧고 밤은 길기 그지없는 때에 국내외적으로 깜짝 놀랄 복잡한 사건들이 겹치고 얽혀있는 그런 연말이라 왠지 뒤숭숭하기 까지 하다.

24절후의 스물두 번째 절기로 1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인 동지(冬至)는 태양이 동지선(남회귀선)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그래서 동지는 양력 12월 22일이나 23일 무렵이 된다. 양력으로 계산된 동지가 음력 동짓달 초순경에 들면 애동지, 중순경에 들면 중동지, 그믐 무렵에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태양력인 동지에다가 태음력을 잇대어 태음태양력으로 세시풍속을 형성시켜 의미를 부여하였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또는 작은설이라 하였다. 태양의 부활이라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설 다음가는 작은설로 대접 하는 것이다. 중국 주(周)나라에서 동지를 설로 삼은 것도 이 날을 생명력과 광명의 부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역경의 복괘(復卦)를 11월, 즉 자월(子月)이라 해서 동짓달부터 시작한 것도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동지에는 동지팥죽과 더불어 달력을 선물하던 풍속이 전해오고 있다. 이런 풍속을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11월조에서는 ‘동지(冬至)는 명일(名日)이라 일양(一陽)이 생(生)하도다, 시식(時食)으로 팥죽을 쑤어 이웃(隣里)과 즐기리라. 새 책력(冊曆) 반포(頒布)하니 내년(來年) 절후(節侯) 어떠한고,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하다.’ 라고 노래하고 있다.

동지의 풍속 중에 동지팥죽을 쑤어 솔잎을 이용하여 대문과 곡간이나 벽에 뿌리기도 하는데, 이것은 귀신이 팥죽의 붉은색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액을 막고 잡귀 몰아내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시골에서는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어떤 일의 맨 끝이 되는 부분과 새로운 일의 실마리가 되는 시점을 ‘끄트머리’라고 한다. 동지 즈음인 지금이 가는 해인 신묘년과 오는 해인 임진년을 아우르는 끄트머리인 것이다. 바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할 송구영신의 때이다.

기쁜 크리스마스도 이 무렵이고, 이런저런 연말시상식, 각종 송년모임도 이 시기에 몰려 있다. 직장동료, 동호회원, 일가친척, 학교동창, 동네친지 모두들 연말이 지나게 되면 다시 못 볼 듯이 모임을 주선하고 음주가무를 지속적으로 즐긴다.  예전 보다는 그래도 많이 달라졌고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 부류도 늘었지만, 아직도 어떤 이는 열흘 동안 쉬지 않고 모임이 있다는 둥. 또 어떤 이는 주야 3일을 눈 붙일 겨를 없이 먹고 마셨다는 둥 푸념 같은 자랑으로 게슴츠레해진 눈과 푸석한 몰골로 가는 해를 마무리하는 사람도 있다.

한 때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드레곤볼’이라는 애니메이션 작품이 TV에 방영된바 있다. 드레곤볼은 원숭이 꼬리가 달린 소년 손오공이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 작품은 주인공이 친구들과 함께 흩어진 일곱 개의 구슬을 찾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험담을 그린 만화이다. 그들이 구슬을 찾았던 이유는 구슬을 전부 모으면 용신이 나타나 어떠한 소원이라도 들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용은 상상속의 동물이지만 예로부터 우리 관념 속에는 소원을 빌면 들어주는 신 같은 존재로 자리 잡고 있는 점을 십분 활용한 작품이었다.

육십갑자에는 10천간(天干)과 12지지(地支)가 있다. 즉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의 10천간과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 의 12지지인 것이다. 여기서 10천간에는 각각 특유의 색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갑(甲)과 을(乙)에는 청색, 병(丙)과 정(丁)에는 빨간색, 무(戊)와 기(己)에는 노란색, 경(庚)과 신(辛)에는 흰색, 임(壬)과 계(癸)에는 검은색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새로 맞이하는 2012년은 임진년으로, 육십갑자 중 검은색을 뜻하는 천간의 임(壬)과 용을 의미하는 지지의 진(辰)이 합쳐져 60년 만에 오는 '흑룡(黑龍)의 해'로 불린다. 흑룡은 용기와 비상 그리고 희망을 상징하기에 흑룡의 해에 2세를 낳기 위해 결혼과 출산수요가 몰린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지금이 가는 해를 보내는 토끼해 끝과 오는 해를 맞이하는 용의 해 머리인 이 끄트머리의 시기가 분명하다. 우리 주변의 어려운 이웃도 살펴보고 도우며 지난 한 해를 차분히 마무리 하고, 새로 맞을 흑룡의 해에 성취 가능한 용꿈들을 조용히 설계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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