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장군봉

▲ 나태주 문화원장
얼굴은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동물이나 식물에게도 있고 바위나 산에게도 있다. 특히나 크고 잘생긴 산에게 얼굴의 형상은 뚜렷이 있게 마련이다. 앞모습이 있는가 하면 옆얼굴이 있고 뒷모습도 있게 마련이다.

계룡산 같은 경우, 산의 덩치가 크고 봉우리가 많다 보니 어떤 것이 산의 얼굴이라고 딱히 말하기는 어렵다. 봉우리마다 하나씩 얼굴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산은 제 얼굴을 쉽사리 보여 주지 않는다. 바라보는 위치가 맞아야 하고 또 얼굴을 잘 볼 수 있는 시간대를 택해야 한다. 계룡산 봉우리 가운데서 연천봉이나 천황봉같이 아주 높은 봉우리의 얼굴을 제대로 보려면 헬기라도 타고 올라가 하늘 어디쯤에선가 멈춰 서야 할지도 모른다. 허공 중이 산의 얼굴을 보는 자리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계룡산의 여러 봉우리 가운데 비교적 낮고 마을 가까이까지 내려온 봉우리로 장군봉이 있다. 공주에서든 대전에서든 박정자 삼거리에서 90도로 길을 꺽어 동학사 들어가는 길 오른편으로 올려다 보이는 봉우리가 장군봉이다. 바라보기만 해도 우람하고 잘생겼다. 장군봉이란 이름을 붙일 만하게 남성적인 인상의 봉우리이다.

이 장군봉의 앞모습은 아무래도 동학사 들어가는 길목에서 바라보는 모습일 것이다. 뒷모습은 상신리 도예촌 들어가는 길에서 올려다보이는 닭 벼슬 모양의 연봉일 것이다. 그러나 장군봉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자리는 유성에서 넘어오는 고갯마루 어디쯤이다.

예전엔 삽작고개라 불렀었다. 고개가 상당히 높아서 그 고개를 올라서기만 하면 장군봉이 갑자기 온몸으로 다가서곤 했다. 바로 정면의 얼굴이다. 우람한 산이 떡하니 막아서면 숨이 막힐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 점점 고갯길이 깍이고 낮아져서 이제는 장군봉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장군봉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자리가 허공 어디쯤으로 사라져 버린 셈이다.

나는 가끔 사람들이 숨겨 놓은 얼굴을 볼 때가 있다. 자기도 모르는 얼굴이다. 대개 정면의 얼굴은 잘 다듬어진 얼굴이다. 인식이 지배하는 얼굴이고 긴장이 따르는 얼굴이다. 꾸며진 얼굴이고 거짓의 얼굴일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옆얼굴은 무덤덤한 얼굴이다. 퉁명스럽고 권태로운 얼굴일 때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던져진 얼굴이다.  그에 비하여 뒷모습은 무방비 상태의 얼굴이다. 그냥 그대로 타인에게로만 알려진 얼굴이다.

이 같은 세 가지 얼굴, 세 가지 표정과 전혀 관계가 없는 얼굴이 있다. 가령 앞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 볼 때, 앞모습이 옆얼굴로 바뀌는 순간에 찰나적으로 보이는 얼굴이다.

그 눈길이 칼에 베인 듯 섬뜩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숨겨진 얼굴, 얼굴의 임자도 모르는 얼굴을 그만 보아 버리고 만 것이다. 그건 하나의 비밀한 일이다.

대개의 경우, 야비한 얼굴이거나 비루한 얼굴이기 쉽다. 살기 띤 얼굴일 때도 있다. 사람의 얼굴과 얼굴 사이로 짐승의 얼굴이 잠깐 숨어들어와 번득이는 순간이다. 아, 안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후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도 여전히 순박하고 깨끗하고 맑고 선량해 보이는 얼굴이 있다. 굳이 동물의 얼굴에 비긴다면 초식 동물의 그것. 그 영혼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얼굴. 참 좋은 얼굴이다.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얼굴을 보기는 더 쉽지 않다.

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커다란 산, 높은 산, 계룡산같이 신령스럽기까지 한 산은 그 얼굴을 쉽게 보여 주지 않는다. 아니, 허락해 주지 않는다. 장군봉이야말로 오가는 행인들에게 계룡산의 이마빡처럼 분명하고 우뚝하게 잘 드러나 보이는 산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날마다 장군봉을 보았다 할 것이다. 잘 아노라 그러기도 할 것이다. 참말로 사람들은 계룡산을 본 것이고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장군봉의 진짜 얼굴은 그렇게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얼굴이 아니다.

오래 기다려 준 사람, 깨끗한 마음으로 바라보아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만 살짝, 그리고 잠시 보여 주는 비의(秘意)와 같은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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