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장군봉
계룡산 같은 경우, 산의 덩치가 크고 봉우리가 많다 보니 어떤 것이 산의 얼굴이라고 딱히 말하기는 어렵다. 봉우리마다 하나씩 얼굴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산은 제 얼굴을 쉽사리 보여 주지 않는다. 바라보는 위치가 맞아야 하고 또 얼굴을 잘 볼 수 있는 시간대를 택해야 한다. 계룡산 봉우리 가운데서 연천봉이나 천황봉같이 아주 높은 봉우리의 얼굴을 제대로 보려면 헬기라도 타고 올라가 하늘 어디쯤에선가 멈춰 서야 할지도 모른다. 허공 중이 산의 얼굴을 보는 자리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계룡산의 여러 봉우리 가운데 비교적 낮고 마을 가까이까지 내려온 봉우리로 장군봉이 있다. 공주에서든 대전에서든 박정자 삼거리에서 90도로 길을 꺽어 동학사 들어가는 길 오른편으로 올려다 보이는 봉우리가 장군봉이다. 바라보기만 해도 우람하고 잘생겼다. 장군봉이란 이름을 붙일 만하게 남성적인 인상의 봉우리이다.
이 장군봉의 앞모습은 아무래도 동학사 들어가는 길목에서 바라보는 모습일 것이다. 뒷모습은 상신리 도예촌 들어가는 길에서 올려다보이는 닭 벼슬 모양의 연봉일 것이다. 그러나 장군봉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자리는 유성에서 넘어오는 고갯마루 어디쯤이다.
예전엔 삽작고개라 불렀었다. 고개가 상당히 높아서 그 고개를 올라서기만 하면 장군봉이 갑자기 온몸으로 다가서곤 했다. 바로 정면의 얼굴이다. 우람한 산이 떡하니 막아서면 숨이 막힐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 점점 고갯길이 깍이고 낮아져서 이제는 장군봉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장군봉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자리가 허공 어디쯤으로 사라져 버린 셈이다.
나는 가끔 사람들이 숨겨 놓은 얼굴을 볼 때가 있다. 자기도 모르는 얼굴이다. 대개 정면의 얼굴은 잘 다듬어진 얼굴이다. 인식이 지배하는 얼굴이고 긴장이 따르는 얼굴이다. 꾸며진 얼굴이고 거짓의 얼굴일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옆얼굴은 무덤덤한 얼굴이다. 퉁명스럽고 권태로운 얼굴일 때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던져진 얼굴이다. 그에 비하여 뒷모습은 무방비 상태의 얼굴이다. 그냥 그대로 타인에게로만 알려진 얼굴이다.
이 같은 세 가지 얼굴, 세 가지 표정과 전혀 관계가 없는 얼굴이 있다. 가령 앞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 볼 때, 앞모습이 옆얼굴로 바뀌는 순간에 찰나적으로 보이는 얼굴이다.
그 눈길이 칼에 베인 듯 섬뜩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숨겨진 얼굴, 얼굴의 임자도 모르는 얼굴을 그만 보아 버리고 만 것이다. 그건 하나의 비밀한 일이다.
대개의 경우, 야비한 얼굴이거나 비루한 얼굴이기 쉽다. 살기 띤 얼굴일 때도 있다. 사람의 얼굴과 얼굴 사이로 짐승의 얼굴이 잠깐 숨어들어와 번득이는 순간이다. 아, 안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후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도 여전히 순박하고 깨끗하고 맑고 선량해 보이는 얼굴이 있다. 굳이 동물의 얼굴에 비긴다면 초식 동물의 그것. 그 영혼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얼굴. 참 좋은 얼굴이다. 그런 얼굴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얼굴을 보기는 더 쉽지 않다.
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커다란 산, 높은 산, 계룡산같이 신령스럽기까지 한 산은 그 얼굴을 쉽게 보여 주지 않는다. 아니, 허락해 주지 않는다. 장군봉이야말로 오가는 행인들에게 계룡산의 이마빡처럼 분명하고 우뚝하게 잘 드러나 보이는 산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날마다 장군봉을 보았다 할 것이다. 잘 아노라 그러기도 할 것이다. 참말로 사람들은 계룡산을 본 것이고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장군봉의 진짜 얼굴은 그렇게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얼굴이 아니다.
오래 기다려 준 사람, 깨끗한 마음으로 바라보아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만 살짝, 그리고 잠시 보여 주는 비의(秘意)와 같은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