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은밀한 곳의 ‘골방’....그대는골방을 가졌는가, 철학박사 황필호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함석헌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은밀한 골방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대는 님 맞으려 어디 갔던가?
네거리에던가?
님은 티끌을 싫어해
네거리로는 아니 오시네.

그때는 님 어디다 영접하려나?
화려한 응접실엔가?
님은 손 노릇을 좋아 않아
응접실에는 아니 오시네.
님은 부끄럼이 많으신 님.
남이 보는 줄 아시면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여
말씀을 아니 하신다네.

님은 시앗이 강하신 님,
다른 친구 또 있는 줄 아시면
애를 태우고 눈물 흘려
노여워 도망을 하신다네.

님은 은밀한 곳에만 오시는 지극한 님,
사람 안 보는 그으간 곳에서
귀에다 입을 대고 있는 말을 다하네.

그대는 님이 좋아히시는 골방 어디다 차리려나?
깊은 산엔가 거친 들엔가?
껌껌한 지붕 밑엔가?
또 그렇지 않으면 지하실엔가?
님이 좋아하시는 골방
깊은 산도 아니요 거친 들도 아니요,

지붕 밑도 지하실도 아니요,
오직 그대 맘 은밀한 속에 있네.

그대 맘의 네 문 밀밀이 닫고
세상 소리와 냄새 다 끊어 버린 후
맑은 등잔 하나 가만히 밝혀만 놓면
극진하신 님의 꿀 같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네.

마음속 은밀한 곳의 ‘골방’

나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만 십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다가, 1972년 만우절날에 만난 지 이십여 일 되는 생면부지의 여성과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그 달 말경에 신혼의 아내를 혼자 한국에 놔두고 어머님만 모시고 미국으로 갔다.

더구나 철학박사가 되어 휼륭한 교수가 되려는 청운의 꿈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저 베트남(당시는 월남)까지 흘러 다니면서 돈을 좀 벌어서 귀국했는데, 그것으로 사업을 하기에는 그 액수가 너무 적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과 동업을 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당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그랬듯이, 나도 단지 한국을 떠난다는 사실만이 굉장히 중요했다. 미국에서 굶어 죽지나 말자는 심사였다.

그러다가 나는 인생을 확 바꾸기로 결심하고 늦게서야 오클라호마 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에 입학을 했는데, 바로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나의 신생을 바꾸어 놓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1973년 3월 26일 이었다.

지루한 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마취제의 약 기운이 떨어지면서 혀를 깨물 정도의 고통의 연속이었다. 악 한 달이 지났을까. 어머니 혼자 살고 있는 나의 집을 방문했던 태권도 사범 황세진 씨가 한국에서 온 편지 한 통을 건네 주었다. 벌써 도착한 지가 한두달 지난 것이었다.

그 편지에는 희한하게도 함석헌의 ‘떠남’이란 시가 적혀 있었다.

산엘 오름은
달을 보잠일세
들에 나감은
바람 쐬잠일세
태평양 건넘은
무엇 하잠인가?
그대가 수평선 넘을 젠
나 바위처럼 서서 보려내
그대가 돌아올 때도
나 바위처럼 서서 보겠네
갈 제 그대 얼굴
올 때도 그 얼굴일까?

나는 현재 그 편지의 발신인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리고 편지를 받은 당시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별로 훌륭한 시 같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투사로만 알고 있던 함석헌 선생이 시도 쓰는구나 그저 이런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갈 제 그대 얼굴, 올 때도 그 얼굴일까?”라는 구절을 읽고 울화가 치밀었다. 한국을 떠날 때의 순수한(?) 마음을 잃지 말라는 뜻이겠다. 그러나 나는 이제 몸이 완전히 박살이 났다. 그런데 어찌 옛 얼굴을 그대로 갖고 귀국할 수 있겠는가. 아니, 나는 도대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세월은 흘러서 나는 한국에서 대학 교수가 되었다. 대개 죽어도 하지 않겠다는 일은 꼭 하게 된다. 성서가 맹세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남기영 교수는 나를 만날 때마다 내 얼굴이 완전히 변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가냘프고 보조개도 들어가는 순전(純全)한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눈이 툭 튀어나온 도깨비’ 얼굴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만날 때마다 그렇게 말했다.

어느 날 나는 집에 와서 나의 얼굴을 거울로 쳐다보았다. 매일 봐서 그런지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았다. 그때보다 늙은 것은 사실이지만 보조개는 지금도 그대로 있지 않은가.

그러다가 나는 우연히 다시 함석헌의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라는 시를 접하면서 내 얼굴이 도깨비가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 나에게는 골방이 없다. 언제나 티끌이 뒤끓는 네거리를 쏘다녔고, 거드름을 피는 손을 위해 휘황찬란한 응접실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니 나의 얼굴이 어찌 도깨비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 나는 어디서 골방을 찾을 것인가? 함석헌은 계속해서 외친다.
나는 아직도 나의 골방을 밖에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나는 현재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라는 질문을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이고나 있는가?
나의 애송시는 오늘도 나의 마음을 때린다.

나를 매혹시킨 한편의 시(문학사상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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