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백제 역사유적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위한 국제학술회의

 ▲고려대 김현구 교수가  ‘5~6세기 백제와 왜’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김현구 교수 “5~6세기 백제, 일본서 자라 귀국한 인물 잇달아 등극”

백제 역사유적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국제학술회의가 25일 공주대본부 대회의실에서 ‘5~6세기 동아시아속의 백제와 왜’라는 주제로 열렸다.

공주대백제문화연구소(소장 서정석) 주관으로 열린 이번 심포지엄에서 김현구(고려대) 교수는 ‘5~6세기 백제와 왜’라는 주제의 기조강연에 앞서 “국가 간의 교류가 비정치적인 교류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에 국가 간의 관계라고 하는 큰 틀에 대한 이해 없이 지정치적인 교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그런면에서 고대 하반도와 일본열도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이 되는 시기라 할 수 있는 5,6세기 백제와 일본과의 국가 간의 관계를 재검토해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기조강연에서 “백제는 397년에 왕자 곤지를 일본에 인질로 파견함으로서 일본에 접근해 간다”며 “전지의 도일과 귀국을 전후해서 백제의 왕실에는 일본 왕실의 피가 수혈되고 일본의 왕실에는 백제왕실의 피가 수혈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전지의 도일과 귀국을 계기로 백제왕실과 일본 왕실은 혼인관계로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5세기 후반 한반도에서 삼국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461년 백제의 개로왕이 동생 곤지를 일본에 파견하면서 양국의 왕실관계는 더욱 긴밀해지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백제에는 일본에서 자라서 귀국한 인물들이 잇달아 등극하게 된다”며 “곤지의 둘째 아들 동성왕은 479년 귀국해 등극할 때까지 일본에 머물고 있었고, 동성왕의 뒤를 잇는 무령왕도 501년 등극 직전까지 일본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특히 “무령왕의 동생이거나 적어도 무령왕, 동성왕과 함께 자랐을 가능성이 큰 게이타이(繼體)천황이 일본에서 등극하게 된다”며 “일본 조정에도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백제의 실력자들이 대거 주류하거나 백제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인물이 등극하게 돼 5세기 말이 되면 백제에는 친일본정권이 일본에는 친백제정권이 등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제 역사유적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국제학술회의가 25일 공주대본부 대회의실에서 ‘5~6세기 동아시아속의 백제와 왜’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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