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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서 춘추로 제사 지내던 ‘중악단’
오희숙 기자  |  oheesuk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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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6.02  19: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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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서 제사 지내던 신원사 중악단

   
▲ 신원사
계룡산은 신라시대 오악(五嶽)의 하나로 손꼽힌 명산으로 근세에 이르러서도 계룡산사를 두고 관찰사가 헌관이 되어 국가에서 춘추로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다.

고종 때에 이르러서는 명성황후의 명으로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봉하여 중악단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이 중악단은 현재 신원사 경내에 있으며, 높은 석조기단위에 서남향을 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건물이고, 내부 중앙 후면에 설단(設壇)하여 그 위에 계룡산신을 모시고 있다.

대문간채의 중앙칸 및 중문간채의 중앙칸 판문에 신장상(神將像)이 그려져 있고, 이들의 화방벽 및 담장에는 기와조각으로 수(壽)·복(福)·강(康)·녕(寧)·길(吉)·희(喜) 등의 문자를 무늬로 장식했다.

본전 단청은 약간 변형된 부분이 있지만 건립 당시의 수법을 살필 수 있고, 각 추녀마루 위에 각각 7개씩의 잡상을 배치한 점도 특이하다.

조선시대의 상악단과 하악단은 없어져서 그 유적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중악단만은 그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이다.

또한 왕실 주도로 건축되면서 조선 후기의 장식적이며 특징 있는 궁전 건축양식 및 수법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단묘건축물로서의 격식을 갖추었다.

중악단의 현판은 조선 후기 문신 이중하(李重夏)가 1891년(신묘년)에 쓴 것이며, 1999년 3월 2일 보물 제1293호로 지정됐다.

윤여헌 향토문화연구회 명예회장은 “중악단은 소규모의 건물임에도 화려하고 위엄 있게 조성된 조선 말기의 빼어난 건축물로 꼽힌다”며 “따라서 계룡산 중악단은 그 역사적 배경과 함께 건축사적·기술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또한 “신원사 절의 동쪽편의 시내는 곡곡청류(曲曲淸流)와 평평반석(平平盤石)이 있어 금강산 만폭동에 비유되고 상류를 주계(珠溪)라 하고, 하류를 은암(隱岩)이라 부른다”며 “암반의 글씨는 우암 송시열의 필적이라고 전한다”고 설명했다.
   
▲ 중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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