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고기를 샀다. 보신탕으로 쓰이는 고기가 아니라 개에게 줄 고기를 샀다.일금 5천원, 잔치국수 두 그릇 값이다. 한동안 어쩔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시장으로 가 닭고기튀김 반 마리를 산 것이다. 나는 주인에게 뼈를 발라네고 살코기만 비닐봉지에 담아 달라고 부탁했다.사람도 먹기 힘든 닭고기튀김을 개에게 주기 위해서 사다니, 좀 과한 일이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공주처럼 골목길이 많은 시골 도시도 드물지 싶다.봉황동, 금학동, 반죽동, 중학동, 교동 등. 오래된 마을 묵은 거리일수록 더욱 많은 골목길을 품게 마련이다. 초식 동물의 가늘고 긴 창자처럼 가다가는 막히고 막혔다가는 풀리는 골목길.담장 너머 해바라기 꽃 들이 고개 내밀어 밖을 내다보고 있군. 무엇이 그리도 궁금한지 호박 넝쿨도 꽃송이 두엇 데리고 담장 위
오곡동느지막한 아침 시간, 외출하기 위하여 옷을 갈아입던 참이었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던 아내가 무심한 듯 한마디 했다.“여보, 여부, 저기 좀 보세요. 올해도 산수유 꽃이 폈어요.”우리 아파트에서 바로 건너다보이는 앞산의 발치 부분에 노랑 옷을 걸친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해마다 이맘때면 노란색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붉은 단풍을 보여 주는 산수유
공주에도 반짝 시장이 있다. 금학동에서 제민천을 따라 내려가다가 공주교대와 시청을 조금 지나 봉황동이 시작되는 부분, 공주고등학교께 오거리에 서는 시장이다. 처음에는 한길가에 아무렇게나 전을 벌이고 물건들을 팔았는데 요즘은 제민천 바닥 한편을 공주시에서 시멘트로 포장해 주어 거기에 장이 선다. 개울 바닥이 시장인 셈이다. 개울 쪽에 자리를 얻지 못한 이들은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다. 마음으로만 그랬을 뿐, 용기를 내지 못했다. 기억의 뒤안길. 내가 다닌 초등학교가 있는 마을. 외할머니와 둘이서 살던 오막살이가 있던 마을.설 전날 고향집에 내려간 김에 짬을 내었다. 마침 아들아이가 자동차를 가지고 있어 데려가 달라 했다. 걸어서 한나절 허우적거리던 길이 이야기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끝이 나 버렸다. 여기는 큰
날마다 자전거를 타고 밖으로 나다녔다. 특별한 볼일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다. 그냥 쏘다니고 싶어서였다. 다시 살아난 기쁨을 만끽하고 싶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공주의 여기저기, 골목골목이 보고 싶었다. 안 가 본 곳을 가 보고 싶었고 가 본 곳도 다시 가 보고 싶었다. 때로는 아주 멀리까지 가 보기도 했다.그렇게 가을 한 철을 보내고 겨울이 되었다. 겨울
청벽 그리고 은개우리네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날들은 그 날이 그 날이기 쉽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기 쉽다. 보던 것 또 보고 하던 일 또 하고 만나던 사람 계속해서 만난다. 그러다 보면 일상성에 빠지게 되고 사는일 자체가 지루하고 따분하고 무미건조하게 된다.무엇이든 낡은 것으로 보이고 새로운 것이라곤 없다. 그리움을 상실하게 된다. 어제 본 것을 또 보는
공주에서 유구방향으로 가다 보면 연미산을 넘어서 우성들이 나오고 우성들이 끝나면서 사곡면과 맞닿은 지역에 통천포란 곳이 있다. 통천포? 육지 가운데 왜 포구 포(浦)자 들어간 지명이 생겼을까?아마도 옛날에 그 자리에 보(湺)가 있었던가 보다. 그 보가 변하여 오늘의 ‘포’로 발음되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포’ 앞에 ‘통천’이란 말이 붙었을까? 알려진 바로
내가 다녔던 학교나 근무했던 학교 가운데 지금은 없어진 학교가 많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시골 학교만 찾아다니며 근무한 탓이리라. 학창 시절의 마지막을 보낸 공주사범학교도 그 가운데 하나다.지금은 그 이름조차도 사라져 버렸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 내는 학교였는데 학교 제도 개편에 따라 교육대학으로 바뀐 것이다.오늘날 공주교육대학교가 있는 자리가 내
공주시내를 가로질러 흘러가는 개울 이름이 제민천이다. 제민천은 그 뜻이 참 좋다. ‘제민’이라? 건질 제(濟) 백성 민(民).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불교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름이다. 정말로 개울이 사람을 주제해 주었는지, 아니면 백성을 구제해 주는 개울이 되어 달라는 인간적 소망이 담겨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개울 이름이 제법 의젓하고
폭설 속에서도 산비둘기는 운다밤사이 눈이 내렸다. 내리더라도 흐무지게('흐뭇하게'의 방언) 아주 많은 눈이 내렸다. 해마다 이렇게 2월 하순쯤 내리는 눈은 폭설형이다. 깜짝쇼처럼 내리는 눈이고 혁명군처럼 온 땅을 점령해 버리는 눈이다. 아마도 겨울이 떠나가면서 마지막으로 주고 싶은 선물이 있었던 모양이다.우선 아파트 창문을 열고 베란다에서 두어 컷 신비
애당초 걸어서 가기로 작정했던 길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다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느낌으로는 가까운데 실제로는 상당한 거리엿던가 보다. 예전엔 누구나 걸어서 다녔던 그 길을 두고 이렇게 헤매고만 있는 것은 시절 탓인가. 어쩜 그 둘이 다 변했는지도 모르겠다. 흘러가는 택시를 붙잡았다. 자동차는 대번에 사람을 목적지에 데려다 주었다.곰나루, 옛 이름으로는
공주에서 대전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이다. 금강을 거슬러 동쪽으로 가다가 계룡산 지역을 스쳐 공암 방향으로 가는 길과 금강을 건너 장기 쪽으로 가다가 종촌과 대평리를 거쳐서 가는 길이 그것이다.예전엔 공암을 거쳐 가는 길이 유일한 길이었다. 내가 처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던 길도 이 길이다. 그 때는 금강을 따라 산기슭에 아슬아슬하게 길이 나 있어서 내려다
공주 지역에는 금강을 금강이라 부르지 않고 ‘비단강’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비단강. 비단 한 필을 다 풀어놓은 듯 아름답게 흐르는 강이란 뜻이다. 참으로 금강은 그 흐름이 부드럽고 순한 강이다.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다. 무심히 보아서는 흘러오는 쪽과 흘러가는 쪽이 분간이 안 갈 정도다.공주 사람들이라고 해서 금강이
얼굴은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동물이나 식물에게도 있고 바위나 산에게도 있다. 특히나 크고 잘생긴 산에게 얼굴의 형상은 뚜렷이 있게 마련이다. 앞모습이 있는가 하면 옆얼굴이 있고 뒷모습도 있게 마련이다.계룡산 같은 경우, 산의 덩치가 크고 봉우리가 많다 보니 어떤 것이 산의 얼굴이라고 딱히 말하기는 어렵다. 봉우리마다 하나씩 얼굴이 있다고 보아야 할
예로부터 인간은 저 홀로 인간일 수 없었다. 인간끼리 어울려 인간이었고 자연과 더물어 인간이었다. 산천의 품속에서 인간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의 아들딸일 수밖에 없고 자연을 닮을 수밖에 없다.자연이 유순하다면 인간도 유순하도록 되어 있고 자연이 험하다면 인간 또한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으리라. 산과 강. 그는 적어도 한국인에게는 부형(父兄)의 품격에
아내는 이제 내게 여자가 아니다. 나 또한 아내 앞에서 더 이상 남자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중성의 사람들이다.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다. 그래서 편안해질 대로 편안해졌고 그럴 수 없이 친숙한 인간관계가 되었다. 우리는 서로가 보호자요, 서로가 기대고 의지할 기둥이거나 조그만 언덕이다. 이게 다 세월이 만들어 준 고마운 선물이 아니고 무엇
2월 말에 이사 와 6월에 딸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서 더운 여름철이 닥쳤다. 우리가 세 들어 살고 있는 집은 슬레이트 지붕에다 천장까지 낮아서 해가 떠오르기만 하면 아침나절부터 덥기 시작했다.불가마 속 같다고나 할까. 도저히 방 안에서 견뎌 내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우리에겐 더위를 식히거나 피할 수 있는 아무런 방책도 없었다. 장기간 머물 만한 시골집
지금도 내 마음 속에는 열여섯열일곱 살 먹은 소년이 살고 있다그 소년은 옛 공주사범학교 2층 건물유리창 가에 붙어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금학동 수원지 쪽으로 열려진 산들, 굼실굼실파도, 파도처럼 물결쳐 간 크고 작은 산들가까이서부터 멀어질수록 더욱 짙어져 가는초록에서 군청색 짙은 바다 물빛까지가을 햇빛 아래 밝고 환한 가을 햇빛 아래서면더욱 산들은 멀
공주를 처음 만난 것은 열여섯 나이 때, 공주사범학교에 들어가면서였다. 사범학교는 초등학교 교원을 길러 내는 학교로 고등학교 3년 과정을 밟도록 되어 있었다. 취직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던 시절이라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공부깨나 한다는 아이들이 몰렸다.나는 공주에 와 비로소 서양 문물의 실체와 만났다. 피아노 소리를 처음으로 들어 본 곳이 공주이고, 여러